90년대 3인조 힙합 그룹 DJ DOC 로 데뷔. 비록 그룹 활동은 2000년대 중반 이후 중단됐지만 가요계 영원한 악동으로 늘 함께 대중의 사랑을 받은 김창렬과 이하늘.
두 사람의 우정은 그룹 데뷔를 준비하던 고등학교 시절부터 시작돼 이후 수십 년간 이어져 왔으니 어쩌면 찐형제보다 더 가까울 것 같지만 지난해 불미스러운 사고 소식이 전해지면서 예전 같지 않은 관계가 조명돼 화제가 된 바 있습니다.
2021년 이하늘의 친동생 이현배가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고 이에 이하늘은 물론 이하늘의 동생과도 평소 절친 사이를 유지했던 김창렬은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이현배의 사망을 추모했는데요.
그러나 이하늘의 반응이 조금 이상했습니다. 이하늘은 댓글로 ‘내 동생은 네가 죽인 거다.’라며 갑자기 맹비난을 퍼붓기 시작.
인스타 라이브 방송을 통해서도 ‘본인을 위해 현배가 작사도 해줬는데 밥 한 번 산 적 없다. 생활고로 객사하니 이제야 친한 척을 한다.’며 지난 10년간 참아온 것들을 전부 까발리겠다고 예고했죠.
여기에 더해 이하늘은 ‘김창렬이 그간 그룹 앨범 작업에는 소홀히 하면서 여자에 미쳐서 놀러만 다녔다. 김창렬 때문에 빚을 지게 됐다.’ 등 두 사람 사이의 앙금이 꽤 오래전부터 이어져 왔음을 시사하는 발언을 이어갔습니다.
이하늘의 주장만 들어보면 김창렬은 천하의 쓰레기와 다름없었는데요. 두 사람 사이에는 과연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사건의 전말은 이렇습니다. 과거 DJ DOC 멤버들은 돈을 모아 제주도에 재테크 목적으로 게스트하우스가 딸린 땅을 구입했지만, 애매한 입지로 수익은커녕 은행이자 갚는다고 돈만 줄줄 세게 됐고 이에 김창렬이 리모델링을 제안, 멤버들이 이를 승낙했다는데요.
도중에 정재용이 나가게 되면서 이하늘의 동생 이현배가 자신의 집까지 팔아 정재용의 지분을 승계받았고 리모델링 작업 전반까지 맡게 되면서 고향을 떠나 제주도에 정착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2018년 제주도에서 진행된 이하늘의 결혼식에서 애초에 리모델링을 주도한 김창렬이 비용이 생각보다 많이 나간다는 이유로 갑자기 추가 납입의 거부 의사를 밝혔는데요.
세 명이서 진행하던 투자에 한 명이 빠지니 이자 부담은 배로 들어났고 결국 이현배는 게스트하우스를 직접 공사하면서 생활비를 벌기 위해 건설 일용직에 배달 부업까지 감당해야 했죠.
이하늘은 이 과정에서 이 현배가 교통사고도 당했지만, 생활고로 인해 검사를 제대로 받지 못했다며 이현배가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사망한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이후 김창렬은 이현배의 빈소를 찾아 이하늘과 대화를 시도했지만, 이하늘은 ‘현배를 추모하는 곳이니 다음에 하자.’며 대화를 거부, 김창렬도 빈정이 상했는지 이현배의 발인해도 참석하지 않았다고 하는데요.
당초 김창렬이 본인이 제안한 투자에 좀 더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였더라면 이현배가 그런 안타까운 상황을 겪지 않았을 테니 동생을 떠나 보낸 이하늘에 격앙된 반응도 어느 정도는 이해가 됩니다.
김창렬은 수많은 논란을 겪고도 연예계 활동을 쉬지 않더니, 이 논란의 여파 때문인지 이후로 현재까지 방송에 전혀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고 하네요.
80년대 중반 천재적인 기타 실력으로 업계에 소문이 자자하던 기타리스트 김태원은 밴드 부활을 결성하면서 당시 무명이었던 신인 가수 이승철을 보컬로 기용, 현재 우리가 아는 부활이 탄생하게 됐는데요.
김태원은 엄청난 기타 실력만큼이나 작곡 능력도 뛰어나 앨범 전곡을 직접 만들며 완성도 높은 음악을 선보였고 덕분에 1집과 2집 모두 초대박을 기록하면서 밴드 부활은 전성기를 맞게 됐죠.
하지만 밴드의 특성상 대중의 주목은 모두 보컬 이승철로 향하게 됐고 정작 부활 성공의 핵심 주축으로 힘쓴 김태원은 상대적으로 외면을 받으며 두 사람 사이의 불화의 기류가 싹트기 시작했는데요.
특히 그룹 활동 방향에 있어서도 두 사람은 극명한 입장 차이를 보였다고 합니다. 이승철의 경우 온갖 행사와 무대 스케줄을 소화하며 돈과 명예를 누리고자 했지만, 김태원은 아티스트라는 이유로 행사를 거부하면서 서로를 향한 불평, 불만은 극에 달할 수밖에 없었죠.
이런 와중에 1987년 김태원이 대마초 투약 혐의로 구속되면서 이승철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 부활을 탈퇴했는데요.
이후 이승철 대마초 금단 현상으로 반쯤 폐인이 된 김태원을 찾아가 김태원이 작곡한 회상3라는 곡을 사용하게 해달라고 부탁, 김태원은 옛정을 생각해 이를 승낙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승철은 김태원의 허락도 없이 이 곡에 <마지막 콘서트>라는 제목을 붙여 자신의 솔로 앨범에 수록했고 결과는 모두가 아는 것처럼 이승철의 솔로 전성기로 이어졌죠.
희야, 소녀시대 등 발표하는 곡마다 대박 행진을 이어가던 이승철은 떡상, 대마초로 폭망한 김태원의 엇갈린 행보가 한동안 이어지던 가운데 1990년 이번엔 이승철이 대마초 혐의로 구속되면서 이승철 역시 하루아침에 폭망하게 됐는데요.
5년 여간의 방송 정지 후 1996년 댄스곡으로 복귀를 시도했지만, 인기는 예전 같지 않았고 그렇게 80년대를 주름잡던 부활의 김태원과 이승철은 대중의 기억 속에서 잊히는 듯 보였습니다.
그러던 2001년 네버엔딩 스토리라는 명곡을 탄생시킨 김태원이 아주 오랜만에 이승철에게 먼저 손을 내밀며 잠정적 해체 이후 십 수년 만에 부활의 재결합이 성사됐고 이 곡은 아이돌 그룹이 꽉 잡고 있던 당시 가요계에 큰 반향을 일으키며 각종 방송사 음악 프로그램에서 1위를 차지할 만큼 큰 인기를 누릴 수 있었죠.
하지만 한 번 물과 기름은 영원한 물과 기름인 걸까요? 두 사람은 이번에도 역시 행사 스케줄에 대한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하다 이승철 혼자 지역행사를 감행하며 관계가 틀어졌고 여기에 콘서트 실황 DVD를 발매한 이승철이 김태원을 비롯한 다른 멤버들과 상의도 없이 이승철 with 부활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면서 아예 갈라서게 됐습니다.
마치 이승철 본인이 주인공이고 부활은 들러리 듯한 표현에 김태원이 단단히 분개한 건데요. 이 사건으로 큰 언쟁을 벌인 두 사람은 이승철이 또 한 번 부활을 탈퇴하면서 영영 찢어지게 됐다고 합니다.
둘 중 누가 더 잘못했다를 따지기 이전에 서로를 위해 조금만 맞춰줬다면 결과가 달라지지 않았을지 씁쓸함이 남네요.
데뷔 후 부침도 많았지만 특유의 신나는 음악 스타일로 20년 가까운 시간 동안 대중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는 가수 싸이.
지금까지도 그는 공연의 신으로 불릴 만큼 압도적인 기량과 파워로 꽉 채운 콘서트를 선보이기로 유명한데요. 사실 싸이가 라이브 콘서트로 이름을 떨치기 시작한 데에는 한 선배 가수의 공이 컸습니다. 바로 김장훈인데요.
싸이가 데뷔한 2003년 획기적인 구성의 공연들을 기획하며 공연계를 주름잡고 있던 김장훈은 싸이의 단독 콘서트를 직접 연출하면서 소위 대박을 쳤고 이듬해 싸이는 선배 연출 방법을 차용해 본인의 공연을 직접 연출한 바 있습니다.
선배 밑에서 배운 내용을 바탕으로 자신이 직접 나서서 공연을 기획하는 모습이 일견 훈훈하게 느껴지기도 하는데 정작 당사자인 김장훈은 탐탁치 않아 했는데요. 급기야 싸이의 공연이 자신의 공연을 표절했다고 주장하면서 두 사람은 논쟁에 휘말리게 됐죠.
그러나 싸이의 표절이 공식적으로 인정되지 않으면서 한때 무대 위 절친이던 두 사람은 불편한 사이로 남게 됐습니다.
그러던 2006년 싸이의 병역비리 문제가 불거지면서 김장훈이 먼저 화해의 손길을 내밀었고 싸이는 자신이 작곡한 노래를 김장훈에게 선물하면서 두 사람은 예전의 사이를 다시 회복할 수 있었는데요.
싸이가 군에서 제대한 후에는 두 사람이 공동으로 연출한 콘서트 완타치를 무려 3년간 전국 투어로 진행하면서 30만 이상의 관객을 돌파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습니다.
우역곡절이 많았던 덕분에 더 끈끈함을 유지할 수 있었던 김장훈과 싸이, 그러나 박수 칠 때 떠나라는 말을 몸소 보여주듯 김장훈은 2012년 한 토크 쇼에 출연해 애초에 듀엣으로 시작한 게 아니니 가장 성공한 시점에 합동 콘서트를 마감하는게 맞다고 결별을 통보, 두 사람은 그렇게 아름다운 이별을 맞게 됐죠.
하지만 같은 해 사이가 강남 스타일로 세계적인 인기를 누리기 시작하면서 관계는 다시 악화되기 시작했는데요.
2012년 9월 한창 강남 스타일로 전 세계가 떠들썩하던 무렵, 3년간 콘서트 공동 연출자였던 싸이에게 2004년 콘서트 구성을 도용당했다며 자신의 SNS에 게재, 팬들과 댓글로 싸이에 관한 뒷담화를 이어가는 등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행동을 이어간 김장훈.
잘된 동생을 보니 배가 아파서 괜히 태클을 거는 것처럼 보이는데 실제로 김장훈은 싸이가 국내외 뜨거운 반응을 자아내며 승승장구하던 것과 달리
개인 콘서트, 3D 뮤비 등 나름 오랜 시간 공들여 기획한 프로젝트의 대부분이 그야말로 쫄딱 망하면서 싸이와 더욱 비교될 수밖에 없었고, 여기에 동생 싸이에게 열폭한다는 대중의 싸늘한 시선까지 더해져 한때 자살을 시도하기까지 하는 등 극한 상황에 치닫기도 했습니다.
이후 2015년 MBC 라디오스타에 출연한 김장훈은 ‘지난해 싸이한테 전화해서 오해나 앙금을 내려놓고 편하게 풀자고 했다. 완벽하게 화해했다.’고 해명했으나, 정작 싸이는 이에 관해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7년이 지난 지금까지 공식적인 자리에서 김장훈에 대한 언급을 꺼리는 바, 악화된 관계는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