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가 여길 어디라고 찾아와…?” 현미 빈소에 절대 찾아와서는 안됐던 인물 85세 인생을 지옥으로 만든 배신자의 충격적인 정체

“80살이든 90살이든 이가 빠질 때까지 노래할 것이다. 은퇴는 목소리가 안 나올 때까지 할 것이고. 멋지고 떳떳하게 사라지는 게 참 모습이다”라고 말했던 한국의 대표 가수 현미가 안타깝게 우리 곁을 떠나갔습니다.

그녀는 79살의 고령에도 ‘내 걱정은 하지 마’라는 신곡을 발표했고 최근까지 예능에서도 활발한 활동을 하면서 매우 건강한 모습을 보여줬기에 이런 황망한 그녀의 별세 소식은 많은 대중에게 큰 슬픔을 안겨주었습니다.

현미의 팬클럽 회장 김 모신은 자택에서 쓰러져 있는 현미를 발견했고 이내 경찰에 빠르게 신고한 후 인근 병원으로 옮겨섰지만 미처 손쓸 틈도 없이 정말 허무하게 우리 곁을 떠나갔습니다. 경찰은 범죄 의심점이나 극단적 선택의 정황은 없었다고 말하며 현미의 지병으로 인한 별세를 주요 원인으로 지목하는 중이지만 유족 조사 및 병원 치료 내역 검토 등 정확한 사인을 규명하는 중이라고 합니다.

고령의 나이에도 청춘 못지않게 활발한 활동을 펼쳐온 그녀에게 많은 가수들은 그녀를 롤모델로 꼽으며 그동안 존경의 마음 수찰해 보내왔었죠. 이렇듯 누구보다 화려해 보였던 현미의 인생은 그녀의 유명세와는 달리 슬픔 자체였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난 비운의 연속이었습니다.

현미는 어리시절부터 어려운 환경속에서 노래를 해야했으며 아마 모든사람들이 아는 현미와 이봉조의 결혼스토리는 그녀에게 아마 가장 큰 시련이었을 듯 싶습니다. 이봉조는 당시 유부남에 슬하에 아이 2명까지 있었지만 현미는 임신했을 당시 그사실을 알게되었고 이미 늦어버려 이봉조와 결혼생활을 시작했는데 폭력은 물론 폭언까지 당했다고 하는데요.

현미는 이봉조 사건 이후 70년대 후반부터는 가수 생활이 뜸해졌지만 국내 최초의 ‘현미 노래 교실’을 만들며 다시 성공가도를 이룩했습니다. 이후엔 가수 활동 외에도 예능을 통해서 재치 있는 입담까지 선보였고 2000년대가 되어서는 ‘아내’라는 곡을 히트시키며 이봉조가 없이도 독자적으로 성공할 수 있는 가수의 역량을 입증했습니다.

다만 여기서 현미에 대해 배신감을 느꼈다고 말하는 이들은 현미가 재즈와 팝의 스타일 및 개성 넘치는 보컬을 버리고 90년대 이후부터는 상업적인 성인 트로트로 전향했다고 비판하지만 두 자녀의 엄마로서 생계를 위한 선택은 어떤 누구도 비난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현미는 그동안 여러차례의 사기와 강도를 당하며 전 재산을 잃어왔는데 현미 스스로가 말하길 “나는 돈을 모을줄 몰랐던 사람이다. 그저 보석을 엄청 좋아했었는데 오죽했으면 남편이 보석하고 살라고 할 정도였다. 그런데 하늘이 무심하게도 최악의 나쁜 일은 동시에 찾아왔었다 사기로 빈털터리가 됐던 시점에 나의 유일한 재산은 보석이었다.

그때 당시로는 7억의 가치였던 보석이니 현시세로는 10억정도의 가치일텐데 집문서 사기로 절망했던 순간에 금고속의 보석은 유일한 희망이었다. 그런데요. 어느 날 집에 도둑이 들었고 금고채로 강도를 당했다. 나의 모든 노력은 한순간에 사기와 강도로 마치 신기루처럼 사라졌었다“ 이런 고백처럼 현미는 유명세와 달리 월세살이를 전전했던 궁핍한삶을 살아왔었습니다.

심지어 이 집문서 사기 사건에 엄청나게 경악스러운 비하인드가 존재했는데 전 재산을 앗아간 사기범은 다른 사람도 아닌 현미에 핏줄 섞인 사촌 동생이었습니다. 현미는 자신의 명의로 된 집에 모친 및 이모의 가족과 함께 살았는데 어느 날 모친은 치매에 걸려 이모에게 칼부림 소동을 일으켰었다고 합니다. 이런 위험한 상황까지 오자 현미는 집을 팔기로 결심했지만 좀처럼 집이 팔리지 않아 큰 어려움을 겪던 상황이었는데요.

이때 현미에게 도움을 주겠다며 미국에 살던 사촌동생이 등장하며 현미는 고마운 마음에 집문서를 맡기며 매매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사촌동생은 현미 몰래 집을 팔고 돈을 가진채 결국 연락을 두절하며 이렇게 핏줄을 배신한 사촌 동생은 사기친 돈을 모두 탕진했었고 최근에서야 용서를 구한다며 연락했지만 현미는 죽을 때까지 용서를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현미의 별세 소식을 듣자 빈소에 조문하겠다고 뜻을 밝혔는데 현재 유가족들의 완강한 반대로 인해 장례식장의 모습을 드러낼지 의문인 상태입니다.

이렇듯 85세 현미는 엄청나게 슬픈 개인사를 겪으며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좌절하지 않고 끝까지 운명에 맞서 누구보다 열심히 투쟁했던 인물이죠. 때문에 많은 젊은이들에게 귀감이 되는 인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녀에게 존경과 추모의 마음을 담아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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