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는 트위스트를 최초로 소개하며 다양한 작품에 얼굴을 보이며 많은 인기를 얻었던 연예인이 있는데요. 그런 그에게 2006년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진 바 있습니다.
그는 지난 2006년 호텔 행사를 마치고 뇌졸증으로 쓰러져 많은 안타까움을 자아냈습니다. 그러다 끝내 그는 식물인간 상태로 투병하다 결국 2010년 별세했습니다.
그가 더욱 안타까웠던 것은 이후 장례식에서 영화인 협회의 그 누구도 오지 않은 것이었는데요. 결국 마지막까지 외명당한 사실이 그를 더 안타깝게 만들었습니다.
그의 장례식에는 후배인 이효정만 방문했는데 당시 이효정이 직접 “트위스트 김의 장례식에 많은 동료들이 왔으면 좋겠다”고 말했을 정도였습니다.
그는 살아생전 청바지를 좋아해 “자신이 죽으면 반드시 청바지를 입혀 화장을 해달라”는 고인의 말대로 청바지를 입은 채 입관해 화장 절차를 치뤘습니다.
심지어 그의 운구는 들 사람이 없어서 근처에 있는 취재진들이 운구를 옮긴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안겨주었는데요. 그는 왜 이렇게 쓸쓸히 마지막 길을 가야 했을지 눈길을 끌었습니다.
그는 신필름의 연구생으로 들어가 배우 생활을 처음 시작했으며, 1962년 영화 ‘동경서 온 사나이’로 데뷔했습니다. 1962년 출연한 영화’아름다운 수의’에서 선보인 그의 트위스트를 눈여겨 본 사람이 많아 본명 대신 ‘트위스트 김’이라는 예명을 썼는데요.
당시 자유와 청춘에 목말라 있던 젊은이들에게 청바지를 소개하며 많은 인기를 얻었던 그는 ‘맨발의 청춘’영화가 큰 히트를 치면서 얼굴을 다시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의 이름때문에 매우 비참한 결말을 맞이해야 했습니다. 2000년대 초반 넷상에서는 그의 이름을 검색하면 19금 사이트가 여러 개 뜬 것인데요.
이것 때문에 그의 이미지는 크게 실추되면서 영화 및 광고에 출연이 계속 취소되었다고 합니다. 해당 사이트는 그와 아무런 관계가 없었지만, 그를 두고 계속 비교했고 어린 손주는 학교에서 놀림까지 받았다고 합니다.
그는 너무 억울해 운영자들을 상대로 수년간 법정 싸움을 이어갔지만, 승소하지 못했고 결국 뇌졸증으로 쓰러지면서 4년간 병원에 누워있다 결국 떠나게 된 것입니다.
그런 그의 장례식에는 동료배우가 단 한 명도 오지 않아 그의 유족들은 영화계에 큰 실망을 했다고 심경을 전하기도 했는데요.
또한 당시 이런 저런 유언비어에 휩쓸린 그는 밤무대를 돌아다니며 끝내 영화계에는 복귀를 하지 못한 채 비참하게 말년을 보내다 생을 마감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잘못이 아닌 그와 이름이 같다는 이유만으로 너무 많은 벌을 받은게 아닌지 너무 안타깝기도 한데요. 이제는 그가 그 곳에서는 편안히 쉬시길 바라며 억울함이 조금이나마 풀렸길 바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