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랑 이혼하려고 이렇게 까지한다..” 박진영이 첫사랑과 결혼했다더니 이혼 동의도 없이 밝혀버린 이혼 의사

박진영은 1990년대를 대표하는 솔로 남자 댄스가수로 파격적인 노래 가사와 도발적이고 과감한 안무 의상으로 화제를 모았으며 <날 떠나지마> <허니> <그녀는 예뻤다> 등의 곡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는데요.

또한 데뷔 때부터 자신의 앨범 수록곡들을 직접 작사, 작곡하며 능력을 알렸고 이어 1996년 jyp 엔터테인먼트를 설립하며 수많은 가수를 키워내고 있으며 현재 프로듀서 겸 작사, 작곡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박진영이 작곡한 노래들을 보면 1위를 차지한 곡이 무려 55곡에 이른다고 합니다. 그는 예전부터 미국 진출이 꿈이었는데 회사 경영진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미국 진출을 시도하기도 했습니다.

박진영은 1993년 20살이 되던 해 지인의 소개로 만난 서씨에게 첫눈에 반해 1999년 동갑내기 친구였던 그녀와 결혼했지만 10년 만인 2009년 이혼했는데, 첫 번째 아내는 박진영의 첫사랑이며 16년이라는 시간을 함께 지냈다고 알려져 화제가 되었습니다.

서씨는 서울여자대학교 의류학과를 졸업해서 박진영과 결혼할 당시 서울 강남 청담동에서 플라워숍을 운영하기도 했는데요. 결혼 당시 그녀의 가족들은 연예인 남편은 안 된다며 반대해 박진영은 은퇴를 선언하고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하던 중 극비리에 결혼하였습니다.

하지만 이혼 당시 전 부인에게 위자료 30억원과 매달 2000만원의 생활비라는 역대급 이혼 위자료를 지급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박진영의 이혼 발표를 문제점으로 꼽았는데요. 박진영은 2009년 자신의 회사 홈페이지에 이혼했다고 글을 올려 아픈 심정을 토로했고, 12월 ‘SAD FREEDOM’이라는 앨범을 내면서 이라는 곡까지 써서 팬들에게 의미심장하 심경을 담아내기도 했습니다.

여러 방송에서 자신의 아픈 마음도 내비쳤던 그가 알고 보니 이혼 상태가 아니었던 것인데 전 부인 측 주장에 따르면 당시 서씨는 이혼할 마음이 없었고, 기사를 보고 나서야 자신에게 인터넷으로 이혼 통보를 했다는 것을 알았으며 실제로 이혼 발표를 한 뒤 약 1년간 두 사람은 법적 부부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이에 대해 박진영 측에서는 이혼은 하기로 합의되어 있었다고 반박했는데 누리꾼들은 ‘이혼 상태가 아니었는데 한 것처럼 꾸미고 그걸 이용해 먹었다’며 비난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세월호 참사 이후 박진영 현재 부인이 세모그룹 유병언 회장의 조카라는 루머가 돌기도 하는데 이는 곧 사실로 밝혀집니다. 이와 관련해서 박진영은 “아내가 문제가 된 회사 ‘청해진 해운’ 소유주들과 친척이라는것 이외에는 어떤 연관도 없는데, 아무 얘기나 막 써도 되는 나라인가요? 제 신앙에 대해서는 제가 한 모든 인터뷰나 음악을 들어보시면 아실 것입니다.” “저는 지난 몇 년간 많은 종교를 공부해봤으나 여전히 무교이죠. 더 이상 근거 없는 얘기가 떠돌아다니지 않기를 바랍니다.”라고 발표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박진영 장인인 유병호가 세월호 사건 이후 체포되었는데요. 유병호는 ‘구원파’ 유병언의 동생이며 유병언 계열사인 ‘사이소’의 감사를 맡은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검찰은 유병호가 컨설팅 비용과 사진 작품 구매 등을 통해 유병언 일가의 수십억 원의 회삿돈을 몰아준 것으로 의심하고 그를 체포하게 된 것입니다.

결국 박진영 아내의 아버지 유병호는 2014년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횡령 및 배임 혐의로 징역 2년을 받게 됩니다. 그에 따라 구원파의 자금이 jyp로 흘러가고 있다는 루머가 돌기도 했는데 이에 박진영은 “아내가 유병언의 조카는 맞지만 jyp의 불법 자금은 없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디스패치 보도에 의하면 ‘박진영이 구원파 전도 집회를 열었다’고 보도했으며 이 집회는 박진영 재혼녀로 알려진 아내가 관련이 있다고 보도했는데, 이에 박진영 측은 ‘구원파 몇분이 자신의 강의를 들어보고 싶다고 와서 앉아 있었으며 성경 공부 집회였다’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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