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심이가 없었더라면 전 여기 없었을거에요…” 김혜자의 파란만장했던 인생과 그녀를 있게해준 고두심의 감동적인 사연

지난 1월 11일 김혜자씨가 출연한 유퀴즈가 방영된 후 커다란 센세이션이 일어났습니다. 과연 김혜자 씨의 인생엔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었기에 시청자들은 큰 울림을 받은 걸까요?

김혜자 씨의 여러가지 얘기 중에 큰 화제가 됐던 것 중 하나는 바로 그녀의 아버지 이야기였습니다. 김혜자씨 아버지인 고 김용택님은 군산에서 초등학교를 나온 뒤 유학을 가서 일본 명치대학, 미국 미시간주 호프 대학을 거쳐 1937년 시카고 노스 웨스턴 대학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중국 상해를 오가며 독립운동까지 참여했는데요. 광복 후 미군정 시절 재무부 장관을 맡았고 제1공화국 시절 사회부 차관도 역임했죠. 이후 4회에 걸쳐 국회의원 선거에 도전했지만 정당 공천을 받지 못하거나, 본선에서 고배의 잔 마셨습니다.

이런 고 김용택님에게 김혜자씨는 어떤딸이었을까요? 김혜자씨 아버지 김용택님은 17살 때 2살 연상의 여인과 결혼하여 두 딸을 낳았습니다. 그 후 22살 때 미국과 일본으로 건너가 유학생활을 하고 15년이 지난 뒤 한국에 돌아와 낳은 딸이 바로 김혜자씨입니다. 그래서 김혜자씨는 언니와 15살이나 차이가 나죠.

김혜자씨가 배우가 되겠다고 했을 때도 어머니와 언니들은 반대했지만 아버지는 좋아해 주시며 공부 많이 해서 좋은 배우가 되라고 응원해줬다고 하는데요.

김혜자 씨 아버지는 말년에 딸이 사준다는 집도 한사코 거절하고 은평구 응암동에 6평짜리 판잣집을 마련하고 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여름날 낮잠을 자다 79세에 세상을 떠났다는데요. 참 김혜자씨 아버지의 인생이 마치 한편의 영화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김혜자씨를 끔찍하게 사랑해 준 사람은 아버지뿐 아니라 또 한 명이 있었습니다. 이번 유퀴즈에서 털어놨던 김혜자씨와 남편의 이야기는정말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습니다.

김혜자 씨는 남편은 어떤 분이었는지 질문을 받자마자 눈에 눈물이 고였습다. 1998년에 세상을 떠난 남편을 지금도 많이 그리워하는 모습이었는데요. 연기밖에 모르고 아무것도 할 줄 몰랐던 자신을 너무나 아껴줬던, 정말 좋은 사람이었다고 전했습니다.

김혜자 씨 남편 고 임종찬 씨는 어떤 사랑을 베푼 걸까요? 김혜자씨보다 11살이 많았다는 남편 고 임종찬 씨는 섬유 사업가였는데요. 김혜자씨는 1960년 이화여자대학교에 입학했지만 그 다음 해 결혼과 동시에 학교를 중퇴했습니다. 당시에 이화여대는 결혼을 하면 다닐 수 없었기 때문인데요. 그때부터 남편은 그녀의 연기를 전폭 지지해줬고 아낌없이 사랑해주고 챙겨줬습니다.

그리고 1998년 갑작스럽게 췌장암 진단을 받고 병원에 누워 있으면서도 혼자 남을 김혜자씨를 오히려 걱정했다고 합니다. 그녀는 경조사 봉투에 축의, 부의 같은 한자도 잘 쓸 줄 몰라서 병원에 누워있는 남편에게 “나 경조사 봉투에 글씨 많이 써줘요 자기 없으면 어떻게”라고 했더니 아픈 가운데에서도 정말 한가득 써줬다고 합니다.

이렇게 다정했던 그녀의 남편 고 임종찬 씨는 그렇게 췌장암 진단 한 달 만에 세상을 떠났는데요. 김혜자 씨는 남편에 대해 회상하며 “우리 남편은 정말 좋은 사람이라서 천국 가 있겠지만 저는 못된 생각을 해서 천국 못 갈 거예요. 그래서 요즘 기도할 때 저 천국 문 앞에만 꼭가게 해주세요.라고 해요. 왜냐면 남편한테’ 자기 미안해 내가 너무 나빴지.’라는 말을 해야 되거든요.” 라면서 죽어서라도 남편을 만나고 싶은 소망을 드러내 많은 시청자들을 뭉클하게 만들었습니다.

한편 이렇게 혼자 남은 김혜자 씨는 연기에 매진할 수밖에 없었는데요. 이후 각종 시상식에 대상을 휩쓰는 국민배우가 되었지만 그녀는 너무나 미안한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본인은 빵점 엄마라고 털어놓으며 엄마로서 미안한 마음을 표현했습니다. 대본 연습으로 하루 종일 방에 틀어 박혀 있었다는데요. 그만큼 돌봐준 적이 없어 미안하다고 전했습니다.그래서 김혜자 씨는 마음 먹은 게 있다는데요.

“저는 아이들에게 면목이 없어요. 그래서 아이들에게 ‘너희 엄마는 어쩜 그렇게 연기를 잘하니?’ 이런 소리라도 듣게 해줘야 돼요. 그래서 연기를 정말 잘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라면서 아이들에 대한 미안함과 연기에 대한 열정을 동시에 드러냈습니다.

그런데 몇 년 전 어느 날 김혜자 씨 아들 임현식 씨가 식품 사업을 하겠다고 나섰는데요. 처음엔 반대했지만 마음을 접지 않고 식품 사업을 계속하자 결국 김혜자 씨는 백기를 들고 말았는데요.

그러면 이왕 할 거 잘해보자는 마음에 자신의 이름을 써서 반찬을 만들도록 했고 또 새 상품이 나올 때마다 김혜자 씨가 제일 먼저 맛과 품질을 검수했다고 합니다. 어릴 땐 비록 못 챙겨줬지만 아들의 사업에 발벗고 나서는 거 보면 역시 김혜자 씨는 국민 엄마가 맞는 듯합니다.

그런데 김혜자씨가 기존에 갖고 있던 따스한 엄마의 이미지를 완전히 깨부수었던 작품이 있죠. 바로 봉준호 감독의 <마더>입니다. 김혜자 씨는 영화 마더의 내용을 보고 지금까지 최불암 씨 아내, 이순재 씨 아내 등으로 고착되어버린 이미지를 벗어날 수 있는 기회인 것 같아 가슴이 뛰었다고 합니다.

또한 마더의 촬영 에피소드도 전해줬습니다 어느날 시나리오에 ‘형언할 수 없는 표정’이라고 디렉션이 적혀 있어서 연기가 너무 어려웠지만 오케이 사인이 낫다고 합니다. 하지만 김혜자씨는 내가 안 되니까 어쩔 수 없이 오케이 한 건가라는 생각에 눈물을 흘렸다는데요.

그러자 잠시 후 봉준호 감독이 문자를 보냈는데 그 내용이 아주 멋있었습니다. ‘모두가 환호하면 인정하세요.’라고 했다는데요. 무조건 너무 ‘잘했다. 최고였다.’는 그런 단순한 말보다 정말 고급스러운 칭찬 같지 않나요?

한편 이런 김혜자씨에겐 뗄 수 없는 좋은 동료도 있죠. 김혜자씨와 고두심 씨와의 인연은 정말 특별하고 닮은 점도 많습니다. 두 사람은 전원일기에서 시어머니와 며느리로 등장했던 뗄 수 없는 관계이죠. 게다가 둘 다 국민엄마라는 타이틀을 지니고 있으며 <디어 마이 프렌즈>, 최근 <우리들의 블루스>까지함께 호흡을 맞추며 명품 연기를 보여줬습니다.

특히 집안일을 하나도 할 줄 몰랐던 김혜자씨는 콩나물 따는 장면, 파 다듬는 장면이 대본에 나오면 너무나 긴장했고, 고두심 씨에게 물어보며 배웠다고하는데요.

새삼 김혜자씨 고두심 씨 두 분이 그럼 흔들리지 않고 계속 활동해 왔기에 우리나라 드라마가 지금까지 이렇게 발전할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김혜자 씨, 고두심 씨 앞으로도 오래오래 건강하게 멋진 연기 보여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