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적인 선택까지 하려 했다…” 가수 계은숙 교도소 출소후 버티다 결국 패가망신한 충격적인 근황

흑백 티비 시대가 끝나가던 1977년 샴푸 CF 모델로 연예계 활동을 시작한 계은숙은 2년 뒤 가수로 변신해 ‘노래하며 춤추며’라는 곡으로 단번에 스타덤에 올랐습니다.

이후 1980년 컬러 텔레비전 방송의 시작이 목소리와 얼굴을 모두 갖춘 계은숙에게 날개를 달아주었고 그런 그녀에게 가요계의 신데렐라라는 애칭이 따라다니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대중들은 신인인 그녀에게 열광했고 계은숙의 인기는 절정이었습니다. 그렇게 가수로서 계은숙은 스타담에 올랐지만 그러나 당시 여자 계은숙은 철저히 무너지고 있었다고 하는데요. 하지만 그 계기로 그녀가 일본으로 떠난 뒤 ‘엠카의 여왕’으로 칭송받으며 훗날 일본에 진출한 대한민국 가수 가운데 가장 큰 성공을 거둔 가수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당시 가수로서 계은숙의 위상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조용필보다 더 큰 성공을 거두었고 그러나 높은 최고의 위치에서 여러 가지 사건에 휘말려 인생이 꼬이기 시작하는데 이후 그녀는 추락이나 나락 정도가 아니라 그야말로 지옥불에 떨어지게 됩니다. 당시 그녀는 나쁜 약의 의존에 반 미쳐 있다보니 실어증까지 생겼고 이후 손도 못 써보고 현행범으로 체포돼 감옥을 가게 되었으며 설상가상 그녀가 수감 생활 중 치매에 걸린 홀어머니가 생을 마감하자 그때 너무도 처랑한 자신의 신세에 감옥에서 생을 마감할까 하는 고민을 한 것도 한 두 번이 아니었다고 전했습니다.

그녀의 나이 18살 때 데뷔곡 ‘배타고 간님’을 발표하며 가수로서 데뷔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그녀의 1집은 반응이 미미했지만, 그러나 그다음에 발표한 노래들이 그야말로 대박을 치면서 MBC 10대 가수 가요제에서 신인상을 수상하는 등 일정이 폭주하기 시작했고, 또한 마침 컬러 텔레비전 방송이 예쁜 계은숙에게는 날개와 같아서 당시 목소리와 외모를 모두 갖춘 그녀에게 대중들은 열광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반면, 여자 계은숙은 철저히 무너지고 있었습니다. 당시 그녀에게는 사랑하는 남자가 있었는데, 재벌집 남자로 결혼 이야기까지 나왔지만 그러나 남자 집에서 ’홀어머니에 딴따라와는 결혼시킬 수 없다‘며 결사반대 하였고 심지어 ‘내 아들과 헤어져달라’며 돈 봉투를 주자 자리에서 돈을 던지고 나오는 가슴 아픈 일을 겪기도 했습니다.

이때 그녀는 사랑하는 남자를 만날 수 없다는 괴로움에 모든 방송을 펑크 내는 등 결국 방송 출연 불이행의 이유로 방송 출연 금지를 당하게 되었고 마침 국제가요제에서 관계자가 일본 진출을 제의하자 더 이상은 자신의 이런 모습이 견디기 힘들어 모든 걸 내려놓고 일본으로 도피하게 된 던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일본에서 2년 정도 흐른 후 마침내 그녀가 오사카에 노래를 발표하게 되었고 그런데 노래를 발표하자마자 본인도 놀랄 만큼 폭발적인 기세로 반응해 결국 노래의 인기는 일본 열도 전체로 순식간에 퍼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녀가 이를 거부하면서 이 무렵부터 소속사와의 반환금 문제나 막대한 세금 추진 근거 없는 루머 등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설상가상 일대 그녀는 타지에서 홀로 감당하기 어려운 난관들이 봉착하자 해서는 안 되는 것에도 손을 대고 마는데 훗날 그녀의 고백에 따르면 “당시 자신은 반쯤 미쳐서 실어증까지 생겼고 나쁜 약에 의존해 영혼을 빼앗겼다”고 했습니다. 한국에 갈 땐 가더라도 출국 전에 일본 법무과와 재입국 절차를 밟고 동의를 하고 갔어야 했는데 그러나 과정을 생략했던 탓으로 결국 그녀는 다시는 일본으로 갈 수 없게 됐다는 걸 나중에야 알고 말았습니다.

그녀는 그렇게 약을 먹고 잠에 들었지만 다음 날 아침 쉭취가 가시기도 전에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는 법 갑자기 경찰이 찾아왔고 정리하면 저녁 9시에 먹었는데 아침 9시에 경찰이 와서 그녀는 손도 못 써보고 현행범으로 체포되고 말았습니다. 훗날 그녀의 고백에 의하면 “나중에 알고 보니까, 운전 기사는 나쁜 약을 파는 사람이었다”고 하는데요.

또한 그녀가 들어가면서 세 명이 불러나 검찰과 사람의 기획 수사에 놀아난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아무튼 감옥에 들어간 그녀는 당시 자신을 너무나도 처랑한 신세에 “감옥에서 생을 마감할까”하는 고민을 수도 없이 했으며 이렇게 세상을 떠나고 싶어 하던 중에 정말 불행하게도 또 하나의 사건이 더 생기면서 원래 8개월 옥살이가 1년 4개월로 늘어나고 말았습니다.

마지막으로, 계은숙 그녀가 고백하길 ”나는 남자에 대한 운도 없고 가수로서 대성할 수 있는 기회도 놓쳤다 또한 돌이켜 보면 데뷔 이후 변변한 여행 한번 다닌 적이 없었는데 하지만 이제는 친구도 만 술도 마시고 밥도 먹고 외출도 하고, 돌아다니고 싶다.

왜 40년이 넘게 그렇게 나를 옥죄고 살았는지 모르겠다. 이제는 아픔의 꽃을 빛으로 바꾸고 여러분 앞에서 저를 구해 주세요라고 노래를 부르고 싶다. 말썽꾸러기 계은숙을 아직도 사랑해 주는 여러분들에게 앞으로도 사랑받는 그녀가 될 수 있도록 잘못한 점이 있다면 언제든지 매를 들어주시고 나를 잘 이끌어 주시길 부탁한다”고 했습니다. 그녀의 앞으로의 행보도 응원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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