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장관에 집은 900평…” 입이 쩍 벌어지는 금수저 집안에서 태어난 배우 김혜자 하지만 늘 우울증을 달고 살아야만 했던 안타깝고 충격적인 인생사

올해로 데뷔 61년 차가 된 국민 배우 김혜자의 결코 평범하지 않았던 인생 스토리가 화제입니다. 김혜자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대한민국 방송 사상 최장수 드라마로 무려 22년 동안 방영되었던 MBC ‘전원일기’에서 보여준 과거 한국의 전형적인 어머니상 이미지인데요.

아니면 최고 시청률 64%를 찍은 역대 최고의 화제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에서 보여줬던 파자마차림에 그저 평범한 동네 아주머니 그리고 화장기 없는 얼굴로 모자를 눌러쓰고 아프리카를 다니며 약자들을 돌보던 헌신적인 이미지 등일 것입니다.

그런 이미지 때문인지 김혜자가 엄청난 금수저 엘리트 집안 출신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많지 않아 보입니다. 김혜자의 아버지 김용택 박사는 시카고 노스웨스턴 대학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은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경제학 박사가 된 입지전적의 엘리트이기도 했습니다.

김혜자 역시 당시 여학생들의 최고 엘리트 코스로 불렸던 경기여중, 경기여고를 거쳐 1961년 이화여대에 진학했습니다. 그때는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흔하지 않던 시기라 여자들은 남자를 잘 만나 좋은 곳으로 시집을 가는 것이 최고의 미덕으로 통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이처럼 김혜자는 겉으로 보기엔 부모 잘 만나 인생의 위기 없이 탄탄대로를 달리며 모두가 인정하는 국민 배우로 지금까지 수십 년 동안 최고의 자리에서 마냥 행복하게 성공적인 삶을 살아온 듯 보이지만 인간이라면 누구나 피해갈 수 없는 고통스럽고 힘든 자신만의 수많은 위기들과 치열하게 싸우며 지금의 자리에 오른 사람입니다.

김혜자는 최근 자신의 이름으로 출간한 ‘생에 감사해’라는 책을 통해 그동안 자신이 살아온 인생 스토리를 공개했는데 책에서 소개한 바에 따르면 김혜자는 우울한 성품을 타고 태어나 어렸을 때부터 정신이 강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부잣집 큰 저택에 살면서 밝고 사교적이고 화려한 어린 시절을 보냈을 법도 한데 이와는 정반대로 김혜자는 사람들과 활발하게 소통하는 걸 힘들어하는 내성적인 성격이었다고 합니다.

그런 성향 때문인지 고등학교 시절에는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던 중 이렇게 사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싶어서 그냥 죽어버릴까라는 생각을 하기도 하고, 실제로 수면제를 입에 털어놓고 병원에 실려가 위세척을 해야만 했던 아찔한 순간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녀는 자매들과도 나이 차이가 워낙 심했던 탓에 김혜자는 큰집에서 주로 혼자 책을 보며 시간을 보냈고 늘 마음 한 켠에는 무언가 채워지지 않는 결핍이 있었습니다. 이처럼 겉으로 보기에는 화려하지만 속은 비어있는 우울한 학창 시절을 보냈는데요.

어렸을 때부터 영화도 좋아하고 막연히 연기도 하고 싶었지만 이화여대에는 그런 과가 없었기 때문에 학업에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무기력한 대학 생활을 보내고 있던 어느 날 그녀에게도 큰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김혜자는 무턱대고 준비도 없이 방송국에 찾아가 탤런트 시험을 보게 되었고 그렇게 김혜자는 KBS 공채 1기 탤런트로 덜컥 합격을 하게 됩니다. 드디어 그렇게 하고 싶었던 연기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입니다.

하지만 김혜자는 연기자가 되고 싶다는 의혹만 있었을 뿐 전혀 연기에 기초를 갖추고 있지 않았던 탓에 제대로 된 연기를 선보일 수가 없었고 오히려 그런 자신의 모습에 큰 충격과 수치심을 느끼게 되었다고 합니다.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은 김혜자는 연기도 학업도 모두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으로 공채 탤런트 연수도 채우지 못하고 학업도 중단한 채 22살의 나이에 11살 연상의 남편을 만나 현실에서 도망치듯 결혼을 선택했습니다.

그렇게 덜컥 첫 아이까지 임신하게 된 것인데요. 당시 그녀는 철저히 준비된 엄마가 되기 위해 극성을 부렸습니다. 그렇게 아이가 태어나고 4살이 될 때까지 김혜자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관심조차 끊은 채 아이에게만 집중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런 집착은 또 다른 시련으로 이어졌습니다. 아이가 자라면서 어느 순간부터는 젖을 먹일 필요가 없어지게 되었고 아이가 엄마보다 친구들과 밖으로 나가 노는 것을 더 좋아하는 순간이 찾아오면서 김혜자는 ‘어떻게 내 아이가 저럴 수가 있나’싶은 생각에 다시 한번 깊은 고독에 빠지게 됩니다.

그렇게 자신을 잊고 아이의 엄마로 한 남자의 아내로만 살다 보니 어느새 김혜자는 인생의 허무함과 죽음에 대한 생각이 더 커져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고 고백했습니다. 그 순간 남편도 싫고 아이도 싫고 결혼한 자신도 싫고 모든 것이 싫어진 깊은 우울증에 빠지게 된 것인데요.

이후 김혜자는 많은 선배의 소개로 작은 소극장에 들어가 연극을 하고 연기의 기초를 하나 둘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매일 연습을 하고 차근차근 기초를 탄탄하게 세우니 어느덧 연기에 자신이 굳고 무대 위에서 보람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김혜자의 무너졌던 자존감은 조금씩 회복이 되었고 그제서야 비로소 제대로 된 인생을 사는 것 같은 느낌을 받으면서 깊은 우울증에서도 벗어날 수 있었고 그렇게 바닥을 몇 번 찍은 후에야 점점 씩씩해질 수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이후 MBC가 개국하면서 김혜자가 스카우트되었고 이후 60년이 넘는 긴 세월 동안 국민 어머니로 국민 배우로 김혜자는 자신의 자리를 굳건히 지켜오고 있는 중입니다. 김혜자는 연기자로서는 성공한 인생을 살았다고 말할 수 있으나 가족들에게는 늘 부끄러운 엄마였고 부족한 아내였다고 자신을 질책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김혜자는 1998년 췌장암으로 먼저 세상을 떠난 남편의 얘기가 나올 때면 늘 울컥하곤 합니다. 어느덧 80년이 넘는 인생을 살아왔고 60년이 넘게 연기를 해왔는데요. 앞으로도 더욱 건강하시고 국민 어머니로 온 국민에게 따뜻함과 큰 울림을 선물해주는 좋은 연기를 오래오래 보여주시길 응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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