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0만 명 관객이라는 대기록을 거둔 베테랑에선 아직도 귀에 아른거리는 황정민의 명대사가 하나 있습니다.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라는 유명한 대사는 류승완 감독이 강수연을 떠올리며 만든 대사라고 하는데요.
류감독의 무명시절 강수연은 배고픈 단역배우나 스탭들을 위해 항상 촬영이 끝나면 본인 돈으로 맛있는 음식을 사주곤 했는데 그때마다 “우리 영화인이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며 후배들을 격려했다고 합니다.
그 시절 류 감독은 “이 말이 너무 멋있다.” 그에게 쉽게 와닿았기에 자신의 최고 흥행작에서 강수연을 떠올리며 오마주한 것인데 이런 그녀가 의식불명 끝에 심정지란 안타까운 비보를 전했습니다.
강수연이란 의미는 간단하게 다음의 업적으로 요약됩니다. 대종상과 청룡영화상 같은 국내 영화제 및 베니스 국제 영화제 같은 세계적인 영화제를 포함하여 여우주연상 10관왕을 수상한 여배우이자 여러 방면에서 최초라는 타이틀을 누구보다 많이 보유한 배우였습니다.
전설담을 열거하자면 여배우 중 가장 많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그녀에게 찾아온 심정지는 하늘의 질투였음이 아니었을까요? 강수연은 1966년 출생으로서 4살 때부터 배우의 운명을 맞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한 남자는 놀이터에서 4살배기 강수연을 보게 되었는데 직감적으로 이 꼬마가 여배우가 운명임을 느끼고 바로 그 자리에서 강수연의 부모를 찾아가 배우로 키울 수 있게 맡겨달라며 절실하게 빌었다고 합니다.
망설이던 부모님은 결국 절실함에 못 이겨 허락을 했고 그렇게 강수연은 말도 제대로 못했던 4살의 나이에 동양방송의 아역배우로서 본격적인 배우 활동을 시작했습니다.그녀는 이쁘장한 외모로 단시간에 인기를 얻었는데요.
그런 그녀는 데뷔 후 고등학교 때까지 딱 하루만 쉰 것을 제외하곤 정말 ‘연기 기계’라고 할 만큼의 치열했던 인생을 살아왔는데 이것은 훗날 강수연이 토로했던 불행의 원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연기를 제외하고 그녀가 10대 시절 가진 유일한 추억은 엄청난 인파에 치여 명동 길거리를 구경한 것뿐이라고 하는데요.
더욱이 고등학교 시절엔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인해 3명의 형제와 부모님을 그녀가 가장으로서 책임져야 했기에 임권택 감독은 그녀가 대견하지만 한편으론 정말 불쌍하다 혀를 찼었습니다. 그녀는 그렇게 가족을 위해 필사적이었습니다.
필사적으로 연기한 그녀는 마침내 18살에 ‘고교생일기’란 드라마로 큰 인기를 얻으며 손창민과 더불어 최고의 하이틴 스타로 올라섰습니다. 나아가 ‘미미와 철수의 청춘스케치’에서 관객 수 1위를 기록하며 성인 배우로서도 자신의 입지를 충으로 해서 확실히 굳혔습니다.
또한 아역 때부터 탄탄하게 쌓은 연기 실력 및 삭발 투혼까지 감행하던 연기에 대한 열정은 국내를 넘어 해외에서도 인정받으며 월드스타란 칭호까지 얻게 됐습니다. 그렇게 4살 때부터 29살까지 탄탄대로만 걸어왔는데요.
하지만 그녀는 ‘장미의 나날‘이라는 영화에서 흥행 참패와 혹평을 받으며 87년 이후 처음으로 여우주연상 후보에서 제외되었는데 당시 언론들은 그녀의 시대가 완전히 끝났다고 보도할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강수연이 대단했던 건 그녀는 포기를 모른다는 점이었습니다.
90년대 추억의 배우로 끝날 수 있던 슬럼프와 위기를 이겨내고 2000년 무렵에 영화 ‘송어’로 다시 한번 ‘여자 최우수 연기상’을 수상했고 마침내 2001년 세상에 보란 듯이 드라마 ‘여인천하’를 성공시키기도 했습니다.
사실 이런 최초의 기록은 비단 드라마 출연료 말고도 일찍이 영화판에서 여배우 최초로 억대 개런티를 받았으며 광고비 또한 최초로 4억을 받았던 여배우입니다. 이는 당시 물가를 감안해 보면 상상도 할 수 없는 금액이었습니다.
이렇듯 어린 시절부터 엄청난 대배우의 인생을 살던 그녀는 잠시 주춤하던 슬럼프 시절을 악용해 스폰서 제안을 하던 남자를 상대로 불같은 싸대기를 때리며 호통을 쳤을 정도로 자존심을 지켰기에 많은 여배우들은 그녀를 항상 존경해 왔습니다.
이런 여배우들을 넘어 연기파 배우 이성민 또한 자신의 롤모델이자 우상이 강수연이라고 늘 언급해왔습니다. 그가 한 방송에서 매우 부끄러워하며 힘겹게 고백하길 항상 그녀의 사진을 철모 속에 갖고 다닐 정도로 오랫동안 그녀를 흠모하고 존경했다고 토로하였는데요.
그런데 강수연이 심정지가 오기 전에 이미 이상 증세를 알아차리곤 119에 전화하며 증세를 호소했지만, 다소 미흡했던 조치로 이런 참사가 결국 벌어지자 이성민이 굉장히 슬퍼하고 있다는 후문이 들려왔습니다.
미리 병원에서만 대기하고 있었어도 이와 같은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어찌 보면 그녀는 일찍이 하늘의 선택을 받았기에 지금 같은 이른 나이에 하늘의 질투를 받았을지도 모릅니다.
충무로에 살아있는 전설이자 귀감이 되는 선배로서 항상 앞장 섰던 그녀의 비보가 너무 슬프기만 합니다. 동료배우와 팬들에게 모두 슬픈 소식일텐데요. 그녀가 이뤄낸 업적들을 후배들이 이어가주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