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를 대표하는 여자 가수를 꼽으라고 한다면, 아마 많은 분들이 혜은이씨를 떠올리실 텐데요. 하지만 가수가 아닌 인간 혜은 씨의 인생은 그리 행복하지 않았죠 특히 그녀의 결혼 생활은 불행 자체였습니다.
그녀는 30년 결혼 생활 끝에 이혼 도장을 찍고 나오는데 덤덤해도 너무 덤덤해 보인 스스로가 30년을 함께 살아왔는데 어떻게 이렇게 아무 감정이 안 드는지 스스로를 자문하곤 했습니다. 이처럼 그녀는 전 남편 김동현으로 인해 지금껏 날린 집만도 자택 친정어머니의 집 시어른들의 집 작은 아버지의 집까지 다 날렸는데요.
한 채씩 날아갈 때마다 이제 그만 천국으로 가려고 준비하고 종종거리며 살아왔지만 여전히 100억이 넘는 빚을 아직도 다 청산하지 못하고 있는 혜은이 그녀의 파란만장한 인생에 대해 말해보고자 합니다.
혜은이는 30일 오전 방송된 KBBS 일 박원숙의 같이 삽시다에서 아파트 여섯 채를 경매로 넘긴 적이 있다고 밝혔다. 혜은이는 나는 경매를 많이 당했다. 전남편과 결혼 이후 집 여섯 채를 날렸다 다 심평이 넘는 대형 평수였다고 털어놨다.
이어 마지막 경매는 대치동에 있는 서른세 평짜리 은마아파트였다. 엄마 집이었는데 25년 전쯤에 그걸 1억 원에 뺏겼다 너 그래서 대치동 근처에도 안 간다 하도 여기저기 경매당해서 갈 곳이 없다고 하소연했다.
1954년 제주도에서 태어난 혜은이는 아버지가 지금으로 치면 연예 기획사의 사장인 유명 악극단의 반장을 하면서 어린 시절 굉장히 부유하게 자랐습니다.
그런데 그녀가 고등학교 때 아버지가 후배의 보증을 섰다 전 재산을 날리면서 집안이 그야말로 쫄딱 망하고 말았습니다. 이에 아버지의 친구가 고등학생이었던 그녀에게 너라도 돈을 벌어야 하니 노래를 해보는 것이 어떠냐는 제안을 하게 됩니다.
결국 고등학생의 나이로 아버지의 친구가 운영하던 서울 무교동의 극장식 맥주홀에서 가수로서 데뷔 아닌 데뷔를 하게 됩니다. 당시 워낙에 예쁘고 노래도 제법 하다 보니 정식 가수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금세 쇼의 주인공이 되어 무대를 휘젓고 다니게 됩니다.
그러다 하루는 작곡가 엄진이 그녀를 찾아와 훗날 그녀를 국민 가수로 만들어 준 작곡가 기로균을 소개해 주게 됩니다.
당시 혜은이의 몸무게가 지금과 다르게 38킬로그램 정도 나갔을 때로 스스로 서 있기조차 힘겨워 보이는 갸냘픈 몸매여서 저렇게 가날픈 소녀가 노래는 제대로 하겠냐는 생각에 그녀에게 사실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았다는데요.
그런데 막상 노래를 시켜보니 나이에 비해서 슬픈 정서가 깃들어져 있고 또한 부드러운 목소리가 잔잔하게 가슴을 파고들자 결국 혜은이에게 곡을 주기로 마음먹게 됩니다. 그는 어느 날 창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고 일찍이 슬픈 인생을 느껴버린 것 같은 해은이의 모습을 떠올리며 그녀의 데뷔곡 당신은 모르실 거야를 작곡하는데요. 그렇게 탄생한 희대의 명곡으로 가요계에 혜성같이 등장한 그녀는 얼마 지나지 않아 전국적으로 노래가 울려 퍼지게 되었습니다.
이후 그녀는 데뷔곡 당신을 모르실 거야를 시작으로 길옥윤과 함께한 삼 집까지 연달아 모두 대성공을 거두며 가수로서는 당시 누구와도 견줄 수 없을 만큼 최고의 자리까지 올라가게 됩니다. 당시 혜은이의 인기는 정말 상상 이상으로 조용필도 능가할 정도로 혜은이의 독주 시대라고 할 만했는데요.
그런데 기록과는 삼 집을 마지막으로, 두 사람은 각자의 길을 걷게 됩니다. 이유는 당시 길옥윤의 매니저 때문인데요. 길옥윤과 매니저와 길옥윤 사이에 큰 갈등이 생겨 멀어지자 애궂은 혜은이만 입장이 곤란해지면서 결국 1981년 갑자기 은퇴하고 말았습니다.
이처럼 너무나도 어이없게 가수를 은퇴한 그녀는 당시 벌어놓은 돈으로 사업을 하게 됩니다. 명동의 혜은이 붓티끄라는 기선복 매장을 촬여한 때는 지방대리점 확장된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동업자들의 사기로 무려 7000만 원의 손해를 보고 사업을 접어야만 했습니다. 참고로 1982년 그녀가 날린 7000만 원의 값어치는 강남의 서른 평대 아파트 두 채 이상의 돈이었고 지금으로 치면 40억 정도의 가치가 되는 돈이었다고 했습니다.
아무튼 이 여파로 잘 나가던 가수 혜은이가 가수 인생은 물론 인생의 비극도 시작되게 되는데요. 그 이유로는 그녀의 첫 번째 남편 최정수를 이 사업 때문에 만났기 때문입니다. 당시 첫 번째 남편 최정수는 이미 두 번의 결혼 경력을 가지고 있던 사람으로 나이 차이가 무려 17살이나 났습니다.
이때만 하더라도 흔치 않던 속도 위반까지 하면서 두 사람은 결혼하게 되는데요. 첫 번째 남편 최정수는 날이 갈수록 참아 입에 담을 수도 없는 나쁜 행동을 하더니, 결국 구속까지 되고 말았고 그녀가 이혼을 요구하게 됩니다.
결국 결혼 5년 만인 1988년 이혼을 하고 딸의 양육권도 함께 넘겨주게 됩니다. 그리고 이때부터 그녀의 몸이 살이 찌기 시작하더니, 가수로서 복구하긴 했으나, 더 이상은 예전에 혜은이가 아니었습니다. 아무튼 첫 번째 남편과 이혼 후 공허한 마음을 달래러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는데 거기에서 두 번째 남편 김동현을 만나 결혼하게 됩니다.
그런데 남편 김동현은 배우생을 영화를 하다 말고 영화 제작자로서 경험도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갑자기 본인이 영화를 제작하겠다고 나섰는데요. 영화가 개봉도 하기 전에 부도가 나고 말았습니다.
그때 김동현이 날린 현금만 30억으로 지금으로 치면 대략 200억 정도의 가치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그는 아파트를 짓겠다며 일을 벌리다 또 실패하면서 결국 부부가 전 재산을 다 잃고 그야말로 길바닥에 나앉고 말았습니다.
이때를 그녀가 고백하길 빚도 비디지만 이 빚의 올가미가 결국 내 주변 사람들에게까지 뻗어 나가고 말았다. 당시 내가 어렵다 보니 이제 남은 것이 작은 아버지 집밖에 없었다 결국 작은아버지에게 집 대출을 받고 싶다고 부탁을 했는데 흔쾌히 수락해 주셨다.
그런데 결국 집을 못 찾아드리고 작은아버지가 남의 집에서 세상을 뜨셨다 작은 아버지는 칩 찾는 것보다 혜은이가 잘 돼야 하는데 언제 저 고생이 끝나나라며 가슴 아파하시며 돌아가셨다고 했습니다. 아무튼 이후 그녀는 무려 15년간 남편의 빚을 갚으며 돈이 될 수 있는 것은 뭐든지 다 해야 했는데요.
심지어 이때는 방송도 못 했던 게 방송을 하면 시간을 많이 뺏기니까 차라리 돈이 되는 밤무대 일을 주로 해야만 했습니다. 그렇게 그녀는 끝이 없는 밑바닥까지 떨어졌지만 삶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빚을 갚아 나갔는데요.
그러다 남편의 빚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될 때쯤 남편 김동현도 미안했는지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는 보답으로 혜연이가 첫 번째 이용과 함께 보내야만 했던 딸을 다시 데려오기로 결심하게 됩니다. 그러다 남편의 빚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될 때쯤 남편 김동현도 미안했는지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는 보답으로 혜연이가 첫 번째 이용과 함께 보내야만 했던 딸을 다시 데려오기로 결심하게 됩니다.
이와 관련해 그녀가 고백하길 이혼을 하며 딸 아이와 헤어졌는데 너무 가슴이 아프고 내가 과연 앞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세월이 한참 흐르고 나서도 어떤 방법으로든 우리 딸을 다시 데려오려고 애를 썼고 기도도 참 많이 했다. 아무튼 지금 딸과 함께 살고 있고 서로 친구처럼 아주 잘 지내고 있다고 했습니다.
아내의 잃어버린 세월을 되찾아주고 싶었던 남편 김동현의 배려 덕분에 딸과 다시 재회하며 드디어 행복이 찾아오는 듯 보였습니다. 하지만 남편 김동현은 이후에도 여전히 정신을 못 차리고 수차례의 사기 혐의로 징역을 구형받고 실형이 선고되는 등 끝없는 막장을 달리게 됩니다.
결국 혜윤이 그녀도 사람인지라 2019년 7월 결혼 30년 만에 이혼하게 됩니다. 이와 관련해 김동현이 고백하길 나도 열심히 해보려고 했었는지 내 혜은이 씨한테 죄스럽고 미안하다 수없이 사업의 영화 제작에 이렇게 실패를 연속으로 했지만, 재기에 대해서 자신이 있다는 생각을 늘 했었다.
혜은이 씨한테도 그렇게 전달을 하고 그랬는데 만약 하느님께서 나를 과거로 돌려준다면 현재를 알기 때문에 내가 혜은이 시를 붙잡지 않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혜은이는 두 번째 이혼 후 고백하길 지금껏 날린 집만도 자택 친정어머니 집 시어른들의 집 작은아버지 집까지 모두 다섯 채다 이를 갚기 위해 평생 종종거리며 살아왔지만 남편의 빚을 아직도 다 청산하지 못한 상태다.
결국 이혼을 하게 되었는데 법원에서 나올 때 정말 신기하게도 눈물도 안 나고 화도 나고 너무 무덤덤하더라 사실 김동현 씨는 정말로 선에서 남을 해코지할 사람은 절대 아니다.
다만 귀가 얇아도 너무 얇아서 자꾸만 안 좋은 일들에 휘말렸다 나는 노래만 부를 줄 알았지 가정주부로서는 빵점이었는데 요리 청소 등의 살림은 남편이 대부분 해줬다.
그런 점에서도 미안하고 남편이 법정에까지 섰을 때는 일이 이 지경이 될 때까지 내가 어떻게 아무런 도움도 못 되었나 싶어 자책감도 들었었다 이혼도 남편이 먼저 당신을 볼 낯이 없고 너무 미안해서 더 이상 당신을 잡지도 못하겠다고 하더라 사실 한동안은 누구에게도 이혼 사실을 알리지 못했다.
보란 듯 잘 살아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딸이 그러더라 엄마 왜 그런 걱정을 해 요즘 이혼은 흉도 아니야. 엄마는 이제 가수 혜은이로 살아 그 말에 그렇게 안심이 될 수가 없더라 이제 과거에 내가 어떠했는지 필요 없는 이야기다 현재와 미래에 내가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