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를 한 적을 한 번도 본적이 없었다…” 예의 없는 인성 때문에 연예계에서 영영 사라져버린 개념 없는여가수의 정체

지금의 가수들에겐 데뷔와 동시에 최대한 많은 콘텐츠의 모습을 드러내는 게 당연한 프로모션이지만 2000년대 초중반에는 조금 달랐습니다. 이른바 얼굴 없는 가수 마케팅이 유행하면서 노래와 뮤직비디오만 공개한 책 대중에게는 철저히 베일에 쌓인 상태를 고수하는 가수들이 많았는데요. 2007년 비행소녀라는 곡으로 혜성처럼 등장한 여성 보컬 마골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한번 들으면 잊을 수 없는 독특한 이름의 마골피는 여느 신비주의 컨셉 가수들이 으레 그랬듯 슈퍼주니어 김장훈 박유천 등 당대 최고의 인기 연예인들이 출연한 뮤직비디오로 관심을 모으기 시작했는데요. 특히 노래 파트에선 마골피 본인이 등장하는 대신 아역배우 김향기에게 립싱크를 시켜 실제 노래를 부른 가수가 누구인지 엄청난 궁금증과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데 성공했습니다.

무엇보다 노래 자체가 워낙 좋았던 덕분에 비행소년은 별다른 프로모션 없이 뮤직비디오만으로 초대박을 기록했고 과연 이 명곡을 부른 마골피라는 가수가 누구인지 대중의 궁금증은 날이 갈수록 증폭됐죠 그렇게 한 달 여가 지난 2007년 3월 말 마굴피는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는데요. 하지만 대중들이 그렇게 기다렸던 마굴피는 상당히 실망스러웠습니다. 아역 김향기의 이미지와 노래 속 청한 목소리 때 때문인지 사람들은 마골피라는 가수의 이미지를 막연하게 순수하면서도 신비로운 소녀로 인식했으나, 정작 무대에 등장한 마골피의 비주얼은 청순과는 거리가 먼 로커 이미지에 가까웠기 때문이죠.

뮤직비디오 공개 때문 확연히 달라진 대중들의 부분 분위기에 결국 첫 방송 이후 헤어와 메이크업 스타일을 전면 교체하는 등 이미지 변신을 위해 노력한 마골피 그러나 이번엔 라이브 실력이 문제였습니다. 비주얼은 어찌저찌 변신해 시도했지만, 사람들의 비난의 멘탈이 흔들렸는지 불안한 음정과 가창력으로 도마 위에 오른 것인데요.

비주얼에 이어 실력 면에서도 대중에게 연이은 실망감을 안긴 마골피는 방향을 급선해 이번엔 4차원 이미지를 구축하기 시작했습니다. 얼굴 공개 후 처음 진행된 한 인터뷰에서 자신의 프로듀서 이자 제작자를 사부님이라는 예사롭지 않은 표현으로 지칭하는가? 하면 나는 일반 사람들과 주파수가 다르다고 생각한다. 남들이 웃을 땐 무표정이고 남들이 웃지 않을 때 혼자 웃는다라며 연신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발언을 늘어놓았죠.

하지만 처음 신비주의 컨셉의 효과가 워낙 강력 기억했던 나머지 4차원 컨셉으로는 아무런 화제성도 기대할 수 없었고 결국 비장의 카드를 꺼낸 마골피 얼마 후 생방송으로 진행된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등장해 갑자기 나는 여자를 좋아한다며 성적 지향성 폭탄 발언을 선보인 것인데요. 현역 가수의 커밍아웃의 논란이 일 차 소속사 측은 전면 마골피 역시 웃자고 한 이야기였다며 금세 수습에 나선 걸 보면 지니 여부와 관련 없는 일종의 노이즈 마케팅으로 추측됩니다.

하지만 2000년대 중반 지금과 비교해 많이 경직 그때 있던 사회적 분위기를 감안하면 마골피의 당시 발언은 수위가 제법 높았고 발언의 파장은 클 수밖에 없었는데요. 그렇게 마골피가 동성애자라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지면서 가수 이미지의 치명타를 입고 말았죠 해당 발언이 직접적인 원인인지는 알 수 없지만, 공교롭게도 마골피는 이 논란을 끝으로 가요계에서 소리소문 없이 종적을 감췄는데요.

그렇게 오랜 시간 모습을 감췄다 2012년 내생의 마지막 오디션이라는 프로그램에 등장한 마골피 이 과정에서 충분히 충격적인 사실이 공개됐습니다. 마골피가 소속사가 컨셉을 강요해서 회사를 그만두게 됐다라고 고백한 것인데요. 마골피의 주장에 따르면 활동 초반 소속사가 자신에게 예의 없는 아티스트 컨셉을 요구했고 이에 따라 카메라 앞이 아니어도 항상 버릇없는 태도를 유지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그래서 선배 가수 김영중부터 대선배 노사연에 이르기까지 여러 선배들이 자신에게 먼저 인사를 해도 멀뚱멀뚱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고 하죠.

이로 인해 가요계에서는 마골피의 인성에 관한 좋지 않은 소문이 돌기 시작 그렇게 마음에도 없던 컨셉질로 수년간 스트레스를 받던 마골피는 결국 소속사 지시에 예의 없는 컨셉을 거부하며 계약을 해지 방송에서도 자취를 감추게 된 것이었습니다. 만약 마골피가 정상적인 소속사를 만나 보통의 가수와 다르지 않은 컨셉으로 대중을 만났다면 지금쯤 어떤 가수가 되었을지 궁금해지네요.

요즘 세대에게는 낯선 이름의 가수 김민우는 90년대 초반만 해도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최고의 남성 솔로 가수로 특히 소녀 팬들의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전부터 준수한 외모와 뛰어난 시간 실력으로 업계에 관심을 자아내던 그는 록밴드 백두산의 보컬 유연성과 음반 기획자 김광수의 러브콜을 받으며 가요계에 화려하게 데뷔했고 데뷔곡 사랑일 뿐야 로 가요 프로그램 5주 연속 1위를 차지하는가? 하면 후속 꼭 이병열차 안에서 루 연속 계속 1위를 기록하는 쾌거를 이루며 신인 가수답지 않은 엄청난 저력을 과시했죠.

갑자기 등장한 발라드 신의 가요계가 들썩이던 무렵 물이 들어올 때 노를 저어야 한다는 옛말처럼 더욱 열심히 활동해야 할 김민우로부터 뜬금없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1990년 7월 후속곡으로 한창 활발하게 활동하던 그가 군에 입대해야 한다며 돌연활동을 중단한 것인데요. 너무 뜬금없는 나머지 사람들은 후속곡 입영열차 안에서라는 노래를 홍보하기 위한 일종의 노이즈 마케팅을 버린 것 아니냐고 의심했지만, 놀랍게도 김민우의 입대는 사실이 데뷔와 동시에 전성기를 누리며 팬들의 사랑을 받기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갑자기 머리를 깎고 나라를 지키러 간다니 이해할 수 없는 김민우의 선택의 팬들의 아쉬움이 이어졌죠. 하지만 알고 보니 이 선택은 철저히 소속사의 주도로 이뤄진 것이었습니다. 소속사가 실제로 입영열차 안에서라는 노래를 띄우기 위해 강제로 입영 절차를 진행했고 김민우는 영장을 받으면 무조건 입소해야 하는 줄 착각해 입대 통지를 받자마자 입대를 결정한 것이었죠.

김민우가 군 복무 중인 상황에서도 노래 인기는 가실 줄 몰랐고 결국 가요 프로그램에서 김민우의 어머니가 트로피를 대리 수상하는 전례 없는 풍경이 연출되기도 했는데요. 폭발적인 인기를 구가하며 그의 방송 삼사 가요 대상 신인상은 물론 골든디스크 신인가수상까지 휩쓸며 가수로서 최고의 영예를 누리게 된 김민우 하지만 김민우는 시상식에 출입 축하를 받는 대신 추운 겨울 나라를 지켜야 했습니다.

훗날 김민우가 전한 바에 따르면 군 복무 당시 사단장의 허락을 받고 우정의 무대에 출연 같은 군인들을 위해 입영 열차 안에서를 열창하며 호응을 받았지만 국방부의 허락 없이 위수지역을 이탈했다는 이유로 영창까지 다녀왔다고 하는데요.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무사히 군 복무를 마치고 가요계에 복귀한 김민우는 다시 활동을 재개했지만, 안타깝게도 서태지와 아이들의 데뷔와 맞물리며 입대 전만큼의 관심을 끄는 데는 실패 틀쓸이 활동을 중단해야 했습니다.

일 집의 화려한 성공이 무색하게도 군 복무 후 대중의 외면을 받은 그는 어쩔 수 없이 가수의 꿈을 접어야 했고 이후 수입차 세일즈맨으로 전향해 현재는 벤츠 강남 지점장으로 근무 중이라고 하네요. 90년대 후반 부산 지역에서 리틀보이라는 댄스팀으로 활동하며 유명세를 떨치던 쌍둥이 량현량하는 우연히 티비에 출연한 뒤 가수 박진영의 눈에 띄었고 단번에 제이와이피와 계약을 맺으며 초등학생 신분으로 가수 데뷔에 성공했습니다. 초등학생 쌍둥이 댄스 그룹이라는 전에 없던 컨셉은 대중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고 량현량하만이 할 수 있는 학교를 안 갔어라는 곡은 한번 들으면 중독되는 독특한 멜로디 가요 차트 10위권 안에 안착하며 성공 가도를 달리기 시작했는데요.

쌍둥이 컨셉으로 광고도 여러 개 찍고 SBS의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아버지와 함께 양양 메리의 작은 약속이라는 코너를 진행하는 등 계속 리얼리티 프로그램까지 출연하면서 인기 인기는 더욱 거세졌죠 하지만 그렇게 센세이셔널한 인기를 누리던 량현량하가 데뷔 앨범 활동 이후 갑자기 사라져 많은 이들의 의문을 자아냈는데요. 일 집이 망한 것도 아니고 량현량하의 소속사인 JYP의 다른 가수 선수들은 활발한 활동을 이어갔기 때문에 량현량하의 승부는 더욱 의아함을 낳았죠 이로부터 약 4년여의 시간이 흐른 2004년 귀여운 초등학생 신분으로 오랜만에 가요계에 컴백한 량현량하 하지만 짧은 사이 대중의 관심은 이들로부터 떨어진 뒤였습니다. 거기다 JYP를 떠나 신생 기획사와 계약을 맺고 이 집을 발매한 건데 회사의 자금력이 부족해 홍보나 활동은 거의 하지 못했고 사실상 사기당한 것과 다름없이 이 집 활동을 마무리 지어야 했죠.

량현량하 부진한 활동이 지속되자 외각에서는 왜 JYP를 나갔냐 박진영이 량현량하를 버려서 망한 것 아니냐 등의 반응이 한동안 이어지기도 했는데요. 시간이 흐른 후 량현량하는 당시의 상황에 대해 아버지와 박진영 간의 의견 차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소속사를 옮길 수밖에 없었다고 전했습니다. 이들의 말에 따르면 박진영은 데뷔하자마자 대박을 기록한 량현량하를 돌연 잠자 미국의 유명 가수 크리스 크로스처럼 20살이 되는 해 이 집을 들고 깜짝 등장 놀라움을 선사하는 컨셉을 제안했다는데요.

하지만 박진영의 의견과 달리 아버지는 쌍둥이들이 여느 가수들처럼 평범하게 활동을 하기 바랐고 두 사람 사이에 의견 간극을 좁히지 못하면서 결국 이 집 발매를 앞두고 계약을 해제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이 집이 폭망한 뒤 나라의 부름을 받고 군에 입대한 량현량하 이후로 가수로 활동하는 두 사람의 모습은 볼 수 수 없는 상황인데요. 2016년 추억의 가수를 소환하는 슈가맨에 출연한 량현량하는 박진영에 대해 진영이 형은 우리를 키워주시고 꿈과 길을 열어주신 분이다.

소속사를 나온 뒤에도 진영이 형과 연락하고 지냈다 묘한간에 퍼지던 불화설에 대해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게다가 량현량하로 활동하던 당시 박진영이 직접 집도 구해주고 학교생활도 원활히 할 수 있게끔 도와줘 무사히 졸업할 수 있었다고 하는데, 과연 그때 박진영의 제안을 수락해 JYP와 계약을 유지한 채 20살에 이 집 앨범을 발표했다면, 량현량하의 인기는 계속됐을지 궁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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