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9년 ‘무정한 그대’를 통해 데뷔한 현철은 ‘청춘을 돌려다오’, ‘봉선화 연정’, ‘싫다 싫어’ 등을 발매하며 무수한 히트곡을 배출했습니다.
현철은 앞서 경추 디스크를 다쳐 수술을 받은 후 신경 손상으로 인해 재활에 전념해 왔습니다. 현철의 마지막 방송 출연은 2020년 KBS2 ‘불후의 명곡’에서 가수 하춘화와 ‘레전드 가수’로 장식했던 무대였습니다. 당시 현장에 참석했던 방청객들의 증언에 따르면 그는 거동이 불편해 PD들의 부축을 받으며 이동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그러나 현철은 그로부터 1년 뒤인 2021년 BBS 라디오 ‘김흥국의 백팔가요’에서 자신의 건강을 두고 염려하는 팬들을 안심시켰습니다. 현철은 “걱정 마라. 안 좋은 곳 없다”면서 씩씩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지난 1990년에는 ‘올해의 저축인’으로 선정돼 국민포장까지 받았던 현철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이후 중학교에 접어들면서 객지 생활을 시작하며 신문 배달 등으로 학비를 충당했습니다.
현철은 결혼한 후에도 보증금 2만 원 월세방에서 신혼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이후 13번에 걸쳐 이사를 다녔던 그는 집안의 가장으로서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해 왔습니다.
현철은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인기를 얻기 시작하자 수입의 70% 이상을 저축해 온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또 바쁜 스케줄 속에서도 버스와 전철을 이용하며 대중목욕탕을 즐겨 찾는 등 스타의 삶과는 거리가 먼 검소한 생활을 이어갔습니다.
뿐만 아니라 현철은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놓인 사람들을 위해 사회봉사활동과 불우이웃 돕기 등에도 꾸준한 행보를 보였습니다. 그는 1989년 어버이 효도잔치 자선쇼를 펼쳐 자신의 수익금 1,000만 원을 기부하는 등 총 3억 원의 성금을 사회취약계층을 위해 기탁했습니다.
현철은 2010년 YTN ‘뉴스&이슈’에 출연해 “노래가 좋아서 가수 생활을 시작했지만 생활고 때문에 우리 딸하고 연탄불 한 개 뗄 수 없을 정도로 힘들었다. 그때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인기를 떠나서 꼭 하고 싶었던 일이었기 때문에 계속 이 길을 걸었다”고 털어놓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자녀들도 나와 같은 과정을 겪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가수가 되는 것을 바라지는 않았다”며 자신의 속마음을 고백했습니다.
한편, 현철은 현재 서울 구의동 혜민병원에 안치되어 있으며 장례식은 아산병원에서 진행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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