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현철이 향년 82세로 별세했습니다. 한국 연예·예술인총연합회는 현철이 15일 밤 오랜 투병 끝에 작고했고, 시신은 서울 구의동 해남병원에 안치되었으며 장례식장은 서울 아산병원으로 정해졌다고 전했는데요. 상주로 고인의 아내 송해경 씨를 비롯해 아들 강복동 씨와 딸 강정숙 씨 등이 이름을 올렸고 유족들은 이날 오후부터 고인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발걸음한 조문객들을 맞이하고 있죠. 현철의 안타까운 소식을 들은 동료들이 서둘러 빈소를 찾았는데 가수 설운도를 비롯해 태진아, 송대관, 남진, 인순이, 진성 등이 찾아와 고인의 명복을 빌었고 정다경, 홍지윤, 진해성, 박구윤, 최소호, 김태연 등 후배 가수들도 애도하며 눈물을 쏟고 있습니다.
1968~9년에 데뷔해 50년 이상 연예계 생활을 한 현철은 엄청난 재산을 모았고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로 가수뿐만 아니라 작곡도 꽤 했는데 처음으로 히트를 친 ‘앉으나 서나 당신 생각’을 작곡하였으며, ‘아미새’와 ‘사랑의 이름표’ 역시도 그의 작품이죠. 생전 현철은 장어 마니아로 서울특별시 광진구 구의동에서 장어 요리 전문점을 운영하였고 뿐만 아니라 그 식당이 위치한 건물 전체가 현철의 소유라는 말도 있는데요. 현철은 태진아, 설운도, 송대관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트로트 4대 천왕이자 가요계 큰 어른으로 2010년대 후반까지 활발하게 활동을 하다 2018년 KBS ‘가요무대’에 출연한 후 건강상 이유로 가수 활동을 중단했고 지난 2020년에 방송된 KBS의 ‘불후의 명곡’에 하춘화와 함께 레전드 가수로 출연한 것이 마지막 방송 활동 모습이었습니다.
마지막 무대 당시 현장에 있던 사람들의 이야기로는 현철이 어딘가 많이 거동이 불편해 보였고 당시 직접 녹화 방송 무대를 관람했던 한 관객의 목격담에 의하면 현철이 굉장히 힘들어했다고 하는데요. 혼자 걷는 것조차 어려워 보였으며 옆에 있던 PD들이 부축해 간신히 무대를 내려왔다고 하는데 이후 모습을 보이지 않는 현철에 대해 많은 사람들은 건강 악화설과 치매설까지 언급하며 걱정스러운 시선을 보내게 됩니다. 이후 약 2년 만에 다시 방송에 나온 현철은 당시 인터뷰를 통해 건강에 대해 직접 언급을 했는데 “오랜만에 무대에 올라 너무 기쁘고 건강을 회복해서 다시 열심히 활동을 이어가겠다”라며 웃으며 답변을 해 주었지만 예전과 달리 많이 초췌해진 얼굴을 감추지는 못한 모습을 보였고 그 무대 이후로 또다시 활동이 뜸해지며 방송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들어지게 되었죠.
그러다가 이후 김흥국의 라디오 방송에 잠깐 출연해 근황을 밝힌 일이 있었는데, 현철은 “자신 씨는 아직까지 문제없으며 올림픽에 나갈 수 있을 정도다”라고 농담을 건네며 애써 밝은 웃음을 지었지만 화면에서는 평소와 달리 거동이 불편해 보였으며 발음을 제대로 못 하는 모습을 비쳤는데요. 그러던 중 KBS ‘연중 라이브’에서 현철의 상황이 알려지며 시청자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는데 제작진은 현철의 아내가 보낸 편지 내용을 공개했고 거기에는 눈물겨운 내용이 적혀 있었습니다. 아내의 편지에는 현철이 병으로 큰 수술과 함께 2년간 재활 치료를 이어왔다고 하는데 심각한 고비를 넘겼고 아내는 “많은 분들이 격려와 위로를 해주셔서 감사드린다. 남편은 여러분들과 만나기 위해 꾸준히 재활에 정진하고 있다”라고 말을 이었죠.
이 일을 겪으면서 남편에게 제일 큰 힘은 주변 사람들이라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다고 언급하면서 남편을 잊지 않고 끊임없이 격려와 응원을 보내준 팬들에게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절대 잊지 않고 조금이라도 보답하며 살겠다고 말해 팬들의 마음을 뭉클하게 만들기도 했는데요. 이토록 많은 이들로부터 사랑을 받았던 현철의 인생은 결코 순탄치 않았습니다. 그는 42년 부산에서 태어나 오일장에서 좌판을 깔고 씨앗을 파는 부모님 밑에서 자랐고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을 따라 시장에 다니며 어머니가 흥얼거리던 노래를 따라 부르곤 했는데 그의 노래 실력은 일찍이 주목받았고 주변 사람들은 그에게 가수를 권유했죠. 하지만 아버지는 아들이 가수가 되는 것을 반대했고 가난한 형편에 안정적인 직업을 갖길 바라며 도시락을 싸 들고 다니면서 말릴 정도로 반대를 했다고 하는데요.
현철 역시 아버지를 좋아하고 많이 의지했기에 부모님의 뜻을 저버리기 힘들어 열심히 공부하여 동아대 경영학과에 수석으로 입학했지만, 가수의 꿈을 포기할 수 없었는지 결국 대학을 자퇴하고 가수로 데뷔하게 되죠. 현철은 69년 군 제대와 함께 ‘무정한 그대’를 발표하며 가요계에 첫발을 내딛었지만 당시 남진과 나훈아가 가요계를 장악하고 있어 그의 진출은 쉽지 않았는데 많은 가수들이 힘든 무명 시절을 겪듯 현철도 많은 어려움을 겪었고 ‘현철과 벌떼들’이라는 그룹까지 결성했지만, 성과는 좋지 않았고 가수로서의 삶은 힘들기만 했습니다. 무명 시절 아내를 만나 결혼했지만, 넉넉지 못한 형편에 결혼식도 올리지 못했고 아내와 함께 13번이나 이사를 했는데 주로 월세 1~2만 원짜리 단칸방에서 생활하며 친구 집에서 셋방을 살면서 봉지 쌀을 사다 먹고 연탄 낱장으로 사다가 추위를 달랬다고 합니다.
그저 물 한 그릇 떠놓고 미래를 약속했던 현철은 아내를 위해 건축 현장에서 벽돌을 나르고 밤에는 업소에서 노래를 불렀습니다. 이때부터 그는 허리 쓰는 일들을 많이 했고 아내는 옷 장사와 카세트 장사를 하며 그를 응원했는데요. 이렇게 힘든 상황 속에서도 서로에게 힘든 내색 없이 따뜻한 말만 건네며 어려운 시절을 함께 견뎌내던 현철은 가족과 아내 생각에 이십 년간의 무명 끝에 가수를 포기하기로 결심하고 그동안 묵묵히 응원해 준 아내에게 마지막으로 ‘앉으나 서나 당신 생각’을 바치고 은퇴를 하기로 했죠. 그런데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었는지 이 곡이 입소문을 타고 큰 사랑을 받게 되면서 그는 가수의 꿈을 이어갈 수 있었고, 87년 리비아 대수로 공사 현장에서 위문 공연을 계기로 그의 얼굴이 알려지기 시작합니다.
절절한 가사가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며 이후 그는 본격적으로 인기를 얻게 되는데 당시 리비아에 파견된 근로자들은 고국의 부인을 보고 싶은 마음에 ‘앉으나 서나 당신 생각’을 부른 가수를 공연단에 꼭 포함시켜 달라고 사전에 요청했고 KBS 방송팀은 주현미, 현숙, 조용필, 김연자, 김세환, 백남봉, 나미 등 당시 내로라하는 인기 스타들과 함께 현철을 합류시켰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얼굴이 안 알려진 현철을 보더니, 다들 리비아로 떠나는 근로자로 알았다고 하죠. 그 뒤 현철은 보란 듯이 가요 시상식을 휩쓸어 버려 동료 가수들을 깜짝 놀라게 했는데 특히 89년 KBS 가요대상을 받을 때는 무명 시절의 서러움이 한꺼번에 복받쳐 시상식에서 사나이 눈물을 왈칵 쏟아내 전국 시청자들의 눈시울을 적시게 했고 그는 눈물로 소감을 제대로 말하지 못할 정도로 크게 감격하게 됩니다.
당시 그에게는 오랜 무명 생활의 설움과 더불어 한 달 전에 돌아가신 그동안 따르고 사랑했던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눈물을 흘렸는데 그 후 현철은 ‘싫다 싫어’로 또 1번 KBS 가요 대상을 수상하며 비로소 국민 가수로 자리매김하게 되죠. 고생 끝에 항상 낙이 온다고 했을까요? 결국 그의 노력과 옆에서 응원해 준 아내 덕분에 오랜 무명 생활을 청산한 후 현철은 30여 년간 열심히 활동하며 행복한 나날을 보내게 됩니다. 하지만 이제 화려한 삶만 즐기면 되는 그에게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지며 많은 이들을 놀라게 했는데 현철은 한 공연 리허설 중 3미터 높이의 무대에서 추락해 갈비뼈 6개의 골절상과 폐를 찌르는 큰 부상을 입었고 이때 그가 세상을 떠났다는 기사가 나올 정도로 상태는 굉장히 심각했죠. 하지만 그는 가수 생활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는데 그 힘든 무명 시절과 가난한 시절이 있었고, 그를 기다리는 팬들이 있었기에 그는 멈출 수 없었죠.
무대에 서겠다는 일념으로 결국 8일 만에 무대에 오르는 투혼을 발휘하게 되는데 이제 와 생각해 보면 그때 활동을 멈추고 제대로 요양을 했더라면 어땠을까? 아쉬움이 느껴집니다. 이후 그는 활동을 이어가기는 했지만, 공식적인 은퇴 발표 없이 2018년 이후 조용히 자취를 감춰버렸는데 아내의 도움을 받아 경추 디스크 수술을 하였고 빨리 회복하고 다시 무대에 올라가려고 했지만, 나이가 많아져서 예전만큼 회복이 빠르게 되지 않으며 상태는 점점 악화되었습니다. 집에서 요양하는 시간이 점점 길어지면서 치료는 계속했지만, 상황은 좋아지지 않았죠. 게다가 그는 최근 인지 기능까지 저하되어 더 이상 인터뷰를 스스로 할 수 없는 상태까지 온 것이 아니냐고 할 정도로 그 누구도 현철과 접촉할 수 없었습니다. 그를 지키고 있는 아내는 더 이상 무대에서 그를 볼 수 없게 된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메시지를 남기게 되는데요.
한 기자가 현철을 다시 무대에서 볼 수 있을지라고 묻자 아내는 무리하거나 절대 욕심내지 않는다고 말했고 현철은 스스로 가수 현철이 아닌 본인의 인생을 살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현철은 2022년 KBS의 ‘불후의 명곡’을 마지막으로 활동을 중단했는데 작년 TV조선 ‘화요일은 밤이 좋아’에서는 현철의 이름을 내세워 그의 명곡을 소개하고 후배들이 그의 히트곡을 다시 부르는 무대가 꾸며졌죠. 당시 방송에서는 홍지윤이 ‘아미새’를 불렀고 진해성이 ‘봉선화 연정’, 정다경이 ‘앉으나 서나 당신 생각’을 선곡했으며 박구윤은 ‘싫다 싫어’, 홍지윤과 최수호가 ‘사랑의 이름표’, 김태현이 ‘수선화’ 등의 곡으로 무대를 꾸몄는데 특히 현철은 정다경의 노래를 듣고 깊은 감명을 받아 손편지를 보낸 것으로 전해지는데요.
당시 투병 중이던 현철은 손편지로 감사한 마음을 전하며 “안녕하십니까? 가수 현철입니다.”라고 말문을 열었고 “잘생기고 예쁘고 정말로 노래 잘하는 아들딸 같은 후배들이 저의 가요제에 출연해 한바탕 걸판지게 놀아준다니 너무도 기쁘고 고맙고 가슴이 벅차다. 수많은 무대를 서 봤지만 이런 아름다운 무대에 함께하지 못해 너무 안타깝고 서운한 마음 뭐라고 표현을 못 하겠다.”며 “이제는 시청자, 청취자가 되어 자네들의 노래를 감사히 잘 듣고 보겠네.”라고 말했죠. 그러면서 “잊혀 가는 현철이라는 이름을 다시 한번 생각해 줘 감사하다는 말씀 전한다.”라며 “후배들이여, 이 현철이는 행복하다. 많이 사랑한다. 고맙다.”라고 편지를 마쳤죠. 이를 본 후배 가수들은 눈물을 훔쳤고 50년간 연예계 생활을 하며 엄청난 재산을 모은 현철은 트로트 발전을 위해 후배들에게 많은 재산을 남긴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아내분은 현철의 마지막 모습을 전하며 ‘내 마음 별과 같이’를 들으며 모두의 사랑 속에 편안히 가셨다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현철이 폐렴 때문에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다 폐렴이 도져서 다시 재입원을 했고 최근 두 달 동안은 중환자실에 계셨다고 하는데 ‘내 마음 별과 같이’ 저 하늘 별이 되어 영원히 빛나리라는 가삿말처럼 그가 평소에도 가장 좋아하는 곡을 마지막으로 들었다고 전했죠. 본인이 가장 아끼는 노래인 ‘내 마음 별과 같이’를 아드님이 귀에 가까이 들려드렸고 그리고 사랑하는 손주들과 직접 인사를 나누신 후에 편안하게 가셨다고 합니다. 20년이라는 긴 무명 생활 동안 낮에는 공사장에서 밤에는 밤무대에서 가수의 꿈을 놓지 않은 현철. 그 시간이 있었기에 그의 노래는 유독 많은 이들의 가슴을 절절하게 울렸고 50년이 넘게 활동하는 동안 크게 구설에 오르지도 않고 성실하게 살아온 사람이기에 그가 무대에 다시 올라오는 날을 기다리는 팬들이 많았던 게 사실인데요. 그러나 야속하게도 그런 팬들의 소원을 들어주지 못한 채 세월은 그를 하늘로 데려가 버렸고 이제 아내와 그의 노래만이 이승에 남아 그를 그리워할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 아래 지원금, 환급금들도 꼭 찾아가세요!
🔻정부에서 25만원을 지원합니다 25만원 민생지원금 신청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