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그맨 이경규의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져 많은 사람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습니다. 이경규는 최근 촬영 중 쓰러져 하루 종일 일어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는 일본에서 촬영을 하다가 쓰러졌습니다. 전국의 도시락 맛을 보는 예능 프로그램을 진행하던 중 상태가 악화되었습니다.
특히 이경규의 건강 상태가 충격적인 이유는 심장 관상동맥이 막혀 사망 직전까지 갔기 때문입니다. 그는 지인과의 회식 자리에서 꼼장어를 먹으려다 젓가락을 드는 순간 졸도하여 응급실에서 목숨을 잃을 뻔하기도 했습니다. 방송에서 잘릴까 봐 티를 내지 못하다가 스트레스로 공황장애까지 오기도 하는 등 그의 몸 상태는 그야말로 종합병원 수준이라고 합니다.
이경규는 대중의 선택을 받아야 하는 험난한 연예계에서 40년 이상을 버텨왔지만, 그로 인해 방송 스트레스로 많은 병을 얻게 되었습니다. 사실 이경규가 데뷔 초반에는 콩트 코미디가 인기를 끌던 시절이었으나, 토크에 능한 이경규에게는 맞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경상도 사투리도 있어서 코미디 연기를 제대로 소화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그는 중국인 분장이나 눈알 굴리기, 쿵후 등의 몸 개그로 겨우 살아남았습니다. 이경규는 나중에 힘겹게 ‘몰래카메라’와 ‘이경규가 간다’로 큰 성공을 거두었지만, 예능계의 극심한 경쟁은 그를 결국 공황장애까지 앓게 만들었습니다.
그는 공황장애로 약물 치료를 받고 있으며 심장병까지 앓고 있어 건강이 크게 우려되는 상태입니다. 그는 한 방송에서 관상동맥 수술을 받았다고 고백하면서 실핏줄 덕분에 겨우 목숨을 건졌다고 밝혀 놀라움을 자아냈습니다. 관상동맥은 심장 근육에 혈액을 공급하는 동맥으로, 문제가 생기면 심근경색의 원인이 되며 심장이 꽉 조이는 고통을 느끼다가 심하면 사망에 이를 수 있습니다. 이경규는 끔찍하게도 마취 없이 수술을 받았다고 합니다. 심장으로 연결된 관상동맥 하나가 막히자 힘이 빠졌고, 녹화를 마친 후 바로 수면 마취 없이 수술을 받았다고 털어놓았습니다.
그는 당시 심정을 회상하며 “침대에 누워 수술을 받으러 가는 과정이 마치 드라마 속 한 장면처럼 천장이 눈앞을 지나가는 것이 기분이 매우 나빴다”고 전했습니다. 혈관을 통해 수액이 주입되는데 관상동맥이 완전히 막혀 금속선으로 혈관을 뚫을 때 철사가 들어오는 느낌을 받았다고 당시 수술의 끔찍함을 설명했습니다. 더불어 그는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죽음의 문턱에서 돌아왔다고 덧붙였습니다.
얼마 전 꼼장어가 먹고 싶어 후배인 배우 한철우에게 연락해 강남의 꼼장어 집으로 향했는데, 소주 한 잔과 함께 꼼장어 한 점을 먹으려던 순간 졸도하며 자리에 쓰러졌다고 회상했습니다. 머리를 부딪쳐 퍽 소리가 날 정도였고, 나중에 보니 머리에 큰 혹이 나 있었다고 당시를 떠올렸습니다. 그는 당시 상황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몽롱한 상태였는데, 그날 꼼장어 집에 다행히 한의사 선생님이 계셨어요. 그분이 오셔서 진맥을 하시더니만 빨리 119를 부르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철우가 구급차를 부르는 사이에 갑자기 배가 아파서 화장실에 갔는데 흑변이 나왔어요. 위에서 소화가 돼서 변이 나오는 동안 나는 위에서 엄청난 출혈을 한 바람에 흑변이 나온 거였죠.”
그 후 이경규는 골든타임에 도착한 앰뷸런스를 타고 병원으로 이송되었습니다. 병원에서 혈압을 재보니 혈압이 40까지 떨어져 있었다고 합니다. 정말 큰일 날 뻔한 상황이었죠. 다음 날 아침 혈액 검사를 받았는데, 보통 수치가 14~15 사이가 정상인데 반해 자신은 7~6까지 떨어졌었다며 자칫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던 위험한 순간이었다고 전했습니다.
위궤양 치료 후 퇴원한 이경규는 덧붙여 말하길 “중요한 것은 그날 내가 꼼장어를 먹으러 가지 않았더라면 길에서 사망했을 거라는 점이다. 그날 집에 아무도 없었고 화장실에서 쓰러졌다면 화장실에서 죽었을 것이다. 확실한 건 그때 꼼장어를 찾지 않았더라면 지금 이 자리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아직도 꼼장어를 사랑한다”라고 너스레를 떨었습니다.
그는 죽을 뻔한 친구를 구한 적이 있습니다. 안동에서 치과의사로 일하는 그의 가장 가까운 초등학교 동창 친구가 있었는데, 이경규가 생일을 맞아 제주도에 갔을 때 그 친구도 제주도로 내려와 축하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친구가 말이 어눌해지더니 그대로 쓰러졌고, 알고 보니 뇌출혈이었습니다. 이경규는 당시를 회상하며 “내가 친구를 들고 뛰어서 골든타임에 병원으로 데려가 살렸다. 친구가 안동에서 혼자 살고 있었는데, 그날 내가 없었다면 세상을 떠났을 것이다”라고 설명해 듣는 이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이경규는 친구에게 “내가 너를 살렸으니 돈 번 거 좀 내놔”라고 농담을 할 정도로 가까운 사이입니다. 이경규가 한때 생명의 위협을 받았을 때 친구의 도움 덕분에 살아날 수 있었던 것일까요? 그의 운이 좋아 친구의 목숨을 극적으로 구한 것이 결국 자신에게도 도움이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사실 방송에서 버럭 하는 모습 때문에 비호감 이미지를 갖고 있지만, 방송계 특성상 출연 섭외를 받으려면 인간적인 평판이 중요한데, 이경규는 40년 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만큼 실제로는 방송계에서 좋은 평판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가 웃기기 위해 버럭 하는 콘셉트로 활동하고 있지만 실은 매우 신뢰받는 사람이라는 이야기죠.
그가 과거에 가족을 잃었을 때 가까운 사람들에게 부고 사실을 전혀 알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빈소가 부산에 있었기 때문에 너무 멀어 사람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그랬다고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빈소 위치와 상관없이 주변에 부고를 알리기 마련인데, 이경규는 외형과 달리 생각이 참 깊은 사람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발인 다음 날도 극도의 슬픔을 억누르며 예정된 예능 프로그램 녹화를 차분히 진행했다고 합니다.
이경규는 예능계에서 40년 이상의 경력을 자랑하는 대선배입니다. 그래서 다소 고리타분한 이미지가 있을 것 같지만 실제로는 꼰대와는 거리가 멉니다. 오히려 그는 꼰대 같은 사람들을 매우 경멸한다고 합니다.
이와 관련해 후배 이수근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최근 KBS 녹화장에서 있었던 일이 있습니다. 녹화장에 들어가려면 자동문을 열어야 하는데 출입문을 안 해서 누군가가 눌러 줘야 열립니다. 그래서 막내 후배들이 줄을 서서 문을 열어주고 있었는데, 경규 형님이 그 모습을 보시고 “잠깐 오라”며 “이게 무슨 짓이냐”고 하셨습니다. “저기 온 친구들도 풀고 힘들게 시험을 통과한 친구들인데 자기 계발의 시간을 줘야지 왜 굳이 고정관념을 깨지 못하고 후배들에게 그런 일을 시키냐”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경규는 한때 자신의 능력으로 인해 침체기를 겪었지만 그 시기를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는 몇 년 전부터 위기설이 기사화되기 시작했지만, 이에 대해 “연예인이 무슨 위기가 있나요? 인기가 올라가면 내려가야 하고 후배들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게 자연스러운 거죠. 인기는 아침 창에 낀 성에와 같아서 해가 뜨면 사라지는 법이죠. 있었는지 없었는지도 모르게 말이에요”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침체기를 겪을 때도 “이 또한 지나간다”는 마음으로 열심히 노력하면 또 다른 기회가 찾아올 것이라는 신념을 갖고 꿋꿋이 노력했다고 합니다.
그는 한 강연장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20km를 배낭을 메고 열여덟 시간 동안 지리산을 걸어올랐습니다. 정말로 그 짐을 버리고 싶었어요. 하지만 산 정상에 도착해 그 배낭을 열어 보니 먹을 것이 가득 들어 있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인생에서 무거운 짐을 쉽게 내려놓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죠. 현재 제게도 많은 짐들이 있습니다. 아내를 먹여 살려야 하고 딸을 시집보내야 하며 나이 든 부모님도 모셔야 합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여러분의 어깨에도 큰 짐들이 많이 있을 겁니다. 젊을 때는 공부하고 좋은 직장에 취직해서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아야 하죠. 그리고 아이가 크면 대학도 보내야 하고 부모님도 모셔야 하니 짐이 많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짐들을 함부로 내려놓아서는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먼 훗날 짐을 내려놓았을 때 큰 행복을 느낄 수 있습니다. 힘이 들고 화가 나고 참기 어려울 때는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생각을 하세요. 어려움도 고통도 지나갑니다. 여러분이 열 살 때나 스무 살 때 겪은 큰 고민들도 지금 돌이켜 보면 추억으로 자리 잡고 있을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경규는 이후 KBS ‘남자의 자격’을 통해 침체기를 마치고 다시 전성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그는 과거의 최고 전성기로 돌아가고 싶냐는 질문에 “지금 나이 든 상태가 더 좋다”고 대답해 대중들을 놀라게 했는데, 그 이유에 대한 그의 철학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옛날로 돌아가고 싶지 않냐’고 물으셨는데, 십 년만 젊어져도 좋지만 저는 지금이 제일 좋습니다. 얼굴에 주름이 많이 생겼지만 지금의 제 모습이 너무 마음에 듭니다. 많은 욕심과 욕망을 버렸기 때문에 지금이 가장 편안하고 행복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정말 놀라운 점은 이경규가 40년 넘게 코미디언으로 활동하면서도 단 한 번도 사건이나 사고를 일으키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유재석은 강호동과 함께 방송 3사의 대상을 모두 받은 몇 안 되는 인물 중 하나입니다. 또한 송해 선생님이 30년간 진행해 온 ‘전국노래자랑’의 후임 MC를 선정할 때 후보로 유재석, 강호동, 김제동, 이상벽, 허참, 신동엽, 이경규 등 대한민국 최고의 MC들이 있었습니다. 막판에는 유재석과 이경규 중 누구를 선택할지 고민하다가 결국 이경규를 선택하며 “‘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건너라’는 속담을 인용해 30년의 방송 경력을 무시할 수 없다”고 이경규를 선택했다고 합니다. 유재석 또한 자기 관리에 있어서 흠잡을 데 없지만, 30년 넘게 방송을 하며 논란을 일으키지 않았던 이경규가 더 안정적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송해 선생님의 신중함이 엿보이는 부분으로, 이경규는 그만큼 대한민국의 레전드 MC로 선정되기도 했었죠.
이제 60대 중반이 된 이경규는 최근 “재산의 의미가 없다”고 말하며 “죽다 살아나 보니 건강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됐다. 70세가 넘어가면 돈이 있든 없든 결국 다 똑같다. 중요한 건 건강이다”라며 건강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이경규가 자신의 바람대로 건강을 잘 유지하기를 바라며 앞으로도 오래도록 대중들에게 행복한 웃음을 전하는 개그맨으로 남아 주길 바랍니다. 이경규에게 여러분의 따뜻한 응원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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