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일은 밤이 좋아에서 MC로 활약하던 장민호를 포함해 모든 출연진이 이별의 아픔을 겪으며 방송이 일시적으로 멈췄습니다. 이 중단의 배경에는 놀라운 사연이 숨겨져 있었습니다. 지난 방송에서 장민호와 붐은 프로그램이 잠시 쉬어갈 것이라고 발표했으며, 이는 프로그램의 영구적 종료가 아닌 일시적 중단임을 분명히 했습니다. 그러나 재개의 구체적인 일정이 없어 사실상 출연진에게는 끝을 알리는 소식과 같았고, 이에 출연진은 눈물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녹화 현장의 분위기는 급격히 어두워졌고, 안성훈은 제작진과 충돌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더욱이 나중에 드러난 바에 따르면, 장민호는 제작진으로부터 갑작스럽게 프로그램에서 하차해야 한다는 통보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장민호가 왜 하차를 해야 했는지, 그리고 이 과정에서 TV조선의 어떤 이야기가 숨겨져 있었는지 궁금증이 커집니다.
바쁘게 생활하며 행복해 보였던 장민호지만 그의 인생은 어렸을 때부터 험난했습니다. 장민호가 긴 무명 시절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가 큰 부자라는 소문이 있었기 때문이라 여겨졌지만, 실제로는 평범한 가정의 가장이었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아이돌로 데뷔했다가 실패한 후 트로트 가수로 전향하여 성공의 길을 걷기 시작했지만, 트로트 앨범이 발매되기 직전 아버지는 세상을 떠나셨고 장민호의 성공을 직접 보지 못하셨습니다. 장민호가 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하며 “아버지가 남긴 재산은 거의 없었다.”라고 말했을 정도로 아버지는 많은 재산을 남기지 않으셨습니다. 중학생 시절 장민호는 연예인이 되고자 하는 희망을 가지고 부모님에게 부탁해 연기 학원에 다니기 시작했으며, 그의 독특한 외모 덕분에 롯데의 껌과 농심의 새우깡 등 여러 광고에서 CF 모델로 활약했습니다.
스무 살이 되던 해 그는 유비스라는 이름의 아이돌 그룹의 일원으로 가수 생활을 시작했으나, 그가 속한 소속사에서 심각한 폭행과 감금을 경험하면서 결국 그룹은 멤버 각자의 길을 가게 되었습니다. 장민호는 “당시에는 앞만 보고 최선을 다했지만, 팀 내 문제가 많아지고 멤버들 사이에 갈등이 생기면서 결국 그룹은 해체되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룹이 해체되었을 때, 좌절보다는 오히려 해방감을 느꼈으며 아이돌로서의 시작은 화려했지만, 실제로 활동하면서 겪은 어려움들로 인해 가능한 한 빨리 그만두고 싶었다.”라고 전했습니다. 장민호는 가수의 꿈을 포기할까 싶었지만, “이대로 살 바엔 다른 일을 찾는 게 낫겠다.”는 생각에 결국 수영 강사로서 생활비를 벌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단순한 아르바이트였으나 수영 클럽의 아줌마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얻으며 2년이 넘는 기간 동안 강사로 일하게 됩니다.
이후 친구의 소개로 ‘바람’이라는 듀오의 멤버로 다시 가수 활동을 시작했으나, 대중의 관심을 끌지 못하고 다시 한 번 실패의 쓴맛을 보았습니다. 장민호는 이 시기를 회상하며 “일어서기조차 힘들 정도로 괴로웠다.”라고 밝혔습니다. “앞날이 막막했다. 연예계에 발을 들였지만 결국 손에 쥔 것 하나 없고 주변의 인정받는 이도 없어 인생이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극심한 아픔을 겪었다.”고 고백했습니다. 그 시절 장민호는 서울에서 보증금 20만 원, 월세 20만 원짜리 낡고 좁은 방에서 살아가며 벼룩 때문에 피부병까지 앓아 치료를 받아야 했고, 경제적으로도 힘든 상황에 처했습니다. 이에 “이보다 더 나빠질 수는 없다.”는 생각마저 들었다고 합니다. “연속된 실패로 빚만 쌓였다.”고 전했습니다.
이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장민호에게 형은 100만 원이 넘는 돈을 계속해서 보내주었고, 누나 또한 동생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을까 봐 용돈을 챙겨주었습니다. 어느 날 한 TV 프로그램에 임시 출연자로 참여하게 되었을 때, 같은 이유로 참여한 영탁을 만나기도 했습니다. 장민호가 서른이라는 다소 늦은 나이에 군 복무를 시작한 후 제대하고 난 뒤 경제적 어려움에 직면해 새로운 직업을 모색하던 중, 외국 항공사의 승무원이 되기 위해 시험 준비에 몰두하게 됩니다.
이 기간 동안 약 6개월간 열심히 공부하고 있을 때, 같은 학교 출신으로 연예 기획사를 운영하는 선배로부터 식사 제안을 받게 되고, 그 자리에서 트로트 가수에 도전해보는 것은 어떨지 권유받습니다. 이 제안에 많은 고민 끝에 선배가 경영하는 기획사에 합류해 트로트 가수로서의 첫발을 내딛기로 결정합니다. 트로트 분야에 입문하기로 결정하기까지 장민호는 “트로트가 구식으로 보일까?” 봐 걱정도 했지만, 과거 아이돌 활동 시절부터 자신의 음색이 두껍고 특유의 ‘뽕끼’가 있다는 평을 들어왔으며, 노래방에서도 자주 트로트 곡을 선호해 왔습니다. 무엇보다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는 절박함이 그를 장르를 가리지 않고 도전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러한 갑작스러운 장르 전환에 가족들이 반대할까 우려되었지만, 오히려 어머니는 장민호의 새로운 시작을 크게 환영하며 아들의 시대를 주변에 널리 알리는 열정적인 홍보대사 역할을 자청했습니다. 트로트 음악계에 발을 들이는 것은 마치 느리게 흘러가는 강물처럼 인내가 필요한 일이었으며, ‘사랑의 누나’로 첫선을 보인 후 장민호는 무대 어디서나 이름 없는 가수라는 이유로 냉대와 비아냥을 일상처럼 겪어야 했습니다.
이 사람이 어떻게 가수라 할 수 있지, 트로트를 부른다고? 하는 등의 부정적인 소리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장민호는 이런 어려움을 음악적 역량으로 극복하려는 끈기를 보이며 끊임없이 연습에 매진했습니다. 트로트 가수로 전향한 지 3년이 지난 후에는 ‘남자는 말합니다’를 발표, 성인 대중음악 시장에서 호응을 얻기 시작하며 데뷔 17년 만에 점차적으로 인기를 얻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인기가 상승세를 타기 시작하자 과거 행사를 마친 후 겨우 한마디 격려를 받던 것에서 변화가 생겼습니다. 이제는 선배 가수들이 직접 장민호를 찾아와 “느린 노래 잘 부르던 너 맞지? 앞으로 잘될 거야”라며 격려의 말을 건네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변화를 통해 장민호는 무대에서 관객과 소통하는 법을 배우고 무대 위에서의 시간이 즐거워졌습니다.
열심히 활동하며 팬층을 넓혀가던 중 주부 가요 교실에서도 인기 있는 가수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는데, 여전히 그의 인기는 최고 수준에는 미치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스터트롯’이라는 대회가 열린다는 소식은 장민호에게 큰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민호를 비롯해 다른 참가자들도 나이에 구애받지 않고 열정을 쏟아부어 결국 장민호는 최종 탑 7에 이름을 올리며 진정한 스타로 거듭납니다. ‘미스터트롯’을 계기로 다양한 행사, 예능 프로그램 참여, 광고 촬영에 이르기까지 활발히 활동하며 중소기업에 버금가는 인기를 누리게 되며 어려웠던 시절의 노력이 결실을 맺게 되었습니다.
장민호가 스타덤에 오른 후에도 겸손함을 잃지 않았습니다. 신인 가수들과의 첫 만남에서도 예의를 지키며 격려의 말을 건네는 모습으로 업계에서는 그의 태도를 높이 평가하고 있습니다.
뛰어난 가창력과 인품, 그리고 매력적인 외모까지 갖춘 그는 여러 방송사의 러브콜을 받게 되었고 그중에서도 TV조선의 ‘화요일은 밤이 좋아’에 출연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미스터트롯’ 1, 2의 탑 7 인물들과 함께 장민호, 붐이 주축이 되어 3년 동안 사랑받으며 방영되었으나 갑작스럽게 방송 중단을 선언하게 되었습니다.
한편, ‘미스터트롯’ 1, 2를 기획한 서혜진 PD가 TV조선을 떠나 MBN과 손잡으면서 ‘미스터트롯2’가 방영되던 시기에 ‘불타는 트롯맨’이라는 유사한 포맷의 프로그램을 선보이며 경쟁을 펼쳤습니다. 초기에는 ‘미스터트롯2’가 ‘불타는 트롯맨’을 앞서가고 있었으나 MBN이 선보인 ‘현역부’의 인기에 밀려 ‘미스터트롯3’이나 ‘화요일은 밤이 좋아’ 모두 시청률과 화제성에서 뒤처지게 되었습니다.
특히 서혜진 PD와 MBN이 ‘현역부’를 ‘화요일은 밤이 좋아’와 같은 시간대에 배치하면서 방송계의 묵시적인 규칙을 위반해 가혹한 경쟁을 벌였고, 이로 인해 ‘화요일은 밤이 좋아’ 제작진은 시청률 경쟁에 크게 밀려 프로그램 종료를 결정하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풍파를 견뎌낼 것을 다짐하며 마지막까지 희망을 잃지 않았습니다. ‘화요일은 밤이 좋아’의 종영은 시청률 저조로 인한 것이 아닌, 충성 시청자들과 ‘미스터트롯’ 출신 멤버들의 합류로 팬덤이 활성화되는 중이었음을 감안해야 합니다. TV조선은 기다리지 않고 프로그램을 변경함으로써 충격을 주었고, 이는 시청자들에게 혼란과 불편을 초래했습니다. 이는 장민호 등 출연진에게도 큰 실망감과 불이익을 초래했습니다. 그 결과 프로그램 변경으로 시청자들의 불안이 고조되며 출연진은 더 이상 방송에 참여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다행스러운 점은 장민호에게 관심을 보이는 곳이 많아 ‘화요일은 밤이 좋아’를 통하지 않더라도 다양한 방송 활동으로 그의 열정을 계속해서 발휘할 수 있을 거라는 각오를 다졌다고 해요. 20년 넘게 이름을 알리지 못하고 고군분투하며 겪은 무명시절을 극복하고 성공의 맛을 본 것처럼, 어떠한 어려움이 장민호 앞에 닥치더라도 그는 결코 굴복하지 않고 대중의 사랑 속에서 꾸준히 활동할 것이라는 점을 확신하며 저 역시 시청자로서 장민호가 앞으로도 힘차게 나아갈 수 있도록 진심 어린 응원을 보낼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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