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아버지 배우 송재호 씨가 지병으로 별세했습니다. 나이 92세가 돼도 움직일 수만 있다면 계속 연기하겠다던 고인은 데뷔 후 반세기가 넘게 150편이 넘는 작품에 출연하며 국민 배우로 자리매김했는데요.
학창 시절 가방에 도시락은 없어도 카메라는 꼭 가지고 다닐 정도로 영화를 사랑했다던 그가 데뷔를 위해 쌍꺼풀 수술까지 감행한 일화는 유명합니다. 송재호는 나이가 들어서는 인자한 아버지 역으로 대중에 친숙한데요.
젊었을 때는 제임스 딘 같이 반항아역도 제법 했고 전쟁 영화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그는 사채로 인해 세 번이나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고 50년간 사채 빚을 갚으며 살아왔다는 충격 고백을 했습니다.
영화 제작의 뜻을 품고 30대 초반에 영화 제작사를 차렸지만 곧바로 망해 1억 원이 넘는 빚을 지게 됐는데요. 엄청난 빚을 진 송재호는 은행을 이용하는 것에 한계를 느껴 사채를 쓰기 시작했고 사채로 빚을 갚는 등 빚으로 빚을 갚는 악순환이 계속되면서 힘든 시절을 보내야 했습니다.
특히 손이 귀한 집안에서 태어난 송재호는 20대 초반에 결혼해 5명의 자녀를 뒀던 탓에 빚을 감당하기엔 더더욱 벅찼다고 하는데요. 송재호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너무 괴로웠고 삶의 희망도 보이지 않았다”라며 심점을 전했습니다.
이어 “늘 쫓기듯 찌들어 사는 인생이 너무 힘든 나머지 극단적 선택을 세 번이나 시도했었다. 약도 먹어봤지만 실패했다“고 밝혔는데요. 그러나 송재호는 신앙생활을 시작하면서 인생관이 바뀌고 희망을 찾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막내 아들을 교통사고로 잃는 등 또 다시 고난이 찾아왔습니다. 4남 1녀의 자녀가 있었는데 2000년 막내아들이 눈길에 차가 미끄러지는 교통사고로 사망했고 그 충격으로 단기 기억상실증에 걸렸던 적이 있었는데요.
한동안 병원 신세를 져야 할 정도로 아들을 잃은 아픔의 충격은 컸습니다. 부실한 고속도로 관리와 국산 승용차의 엉성한 품질이 빚은 참사였던 까닭에 그에 대한 분노까지 겹쳐 자신을 추스르기 힘들었다고 합니다.
심지어 그는 그때 당시 뇌세포가 급속하게 사멸되고 있다는 진단을 받게 될 정도로 충격이 심했습니다. 그러나 막내아들의 사고는 가족을 다시 뭉치게 했고 비뚤어진 생활을 하던 큰아들도 40세가 넘어 성직자가 되면서 다시 용기를 얻게 되었습니다.
결국 송재호는 2005년에 이자까지 모두 갚았다고 전했습니다. 그리고 송재호는 2012년에는 한국 방송 연기자 노조의 일원으로서 KBS를 대상으로 밀린 출연료 지급을 촉구하며 촬영 거부 투쟁에 참여했는데요.
그는 당시 라디오 인터뷰에서 “나 스스로는 생계 걱정을 안 하지만 이 돈을 받아야 생활할 수 있는 후배 연기자들을 위해서 결심했다”며 후배들을 격려하기도 했습니다.
배우로든 탤런트로든 연기 마당에서 그는 기둥 같은 존재였고 기둥도 각을 잡아 군살 촉촉 발라내 허여멀건 사각기둥이 아니라 아름드리 나무를 다듬어 세운 통나무 기둥이었습니다.
그의 연기는 울긋불긋 단청으로 치장한 서까래나 들보와 달리 얼른 눈에 들지는 않지만 기둥을 빼고 집을 말할 수 없듯 그를 빼고 연기를 말하는 것은 왠지 궁색하게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그렇게 깊은 연기를 선보이던 그는 2010년 11월 세상을 떠나게 되었는데 숙환으로 1년간 앓다가 향년 83세에 세상을 떠나며 많은 이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습니다.
언제나 옆에서 친근한 모습으로 있을 것 같던 국민 아버지의 별세 소식에 많은 이들이 슬퍼했습니다. 부디 하늘에서는 그가 원하는 바를 다 이루고 아들을 만나 평안한 삶을 보내시길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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